<영화평>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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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젤리처럼 달콤하고 체리처럼 향긋한'제리 맥과이어'에서 눈을 부라리고 흠을 잡아내는건 어쩌면 좀스럽고 야박하며 덧없는 일인지 모른다.오락 영화니까.이런 할리우드 영화란 즐겁게 웃고 기분좋게 나서기를 제작진과 관객 모두가 바라는 일종

의 약속대련같은 것이니까.게다가 이 영화는 여느 상업 오락 영화가 주지 못하는 것을 준다.적당한 선악대결,단순하리만큼 일관된 캐릭터,갈등의 드라마틱한 고조와 희망에 대한 강박관념,타자를 섬멸해 들어가는 천편일률의 이야기 공식에서 슬

쩍 비켜나 현대 여피족의 솜털같은 향락 대신 절망을,사회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정의와 행운의 은총 대신 배신과 불행의 철퇴를,그리하여 욕망의 변덕스러운 술렁거림을 보여준 것은 칭찬감일지언정 결코 비난할 일은 못된다.

뿐인가,냉혹한 현실 복판에서 살아가는 법,곧'인간미를 잃지 않고 최선을 경주하는 자에게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는 카메론 크로감독의 전언은 듣는 이의 가슴을 환하게 만드는 진정성이 있다.고독을 보상해주는 이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책임

감인지,이게 제대로 된 결혼인지 혼란을 겪는등 톰 크루즈의 연기는 아주 사실적이다.하지만 르네 젤뤼거에는 미치지 못한다.애정을 감추려는 욕망,감추고 있는걸 드러내고픈 욕망,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리의 말 한마디에 맥없이 넘어가고마는 도

로시의 안쓰러운 면면을 그녀는 풋풋한 눈매로 숨김없이 폭로한다.두사람의 세련되면서도 현실적인 대사는 할리우드산 스크루볼 코미디의 재치문답과 길을 달리한다.요즘처럼 우울하고 두려운 소식들로 꽉찬 팍팍한 인생살이에서'제리 맥과이어'가

베푸는 사랑의 연회는 능히 즐길만 하다.

그러기에 나는 잘나가는 스포츠 에이전트가 느닷없이 회사를 상대로

인간성 회복을 외치는 대목을 눈감으려 한다.그를 따라 나서는 미혼모의

결단에도.그럴 수 있으니까 양심의 열병을 실행에 옮기는 제리나

도로시같은 괴짜들이 있어 세상은

활기넘치게 변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성공의 담론을 완성시키기

위해 계약으로 맺어진 인간관계의 현실적인 룰을 변형하고 부화한

것만큼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도로시의 사랑,로드의 우정,제리의 사업은

사장과 직원,선수와 관리 대행

업자라는 자본주의의 비정한 계약관계를 부정한 토대 위에서

성립한다.싸우고 다투면서 우정을 확인해나가는 흑인 미식축구선수와 백인

에이전트,우여곡절을 나누면서 사랑을 쌓아가는 미혼모 비서와 총각

사장이라…일.사랑.우정이 계약의'거래'를

초월해 공생의 삼위일체가 되는 순간 로드식의 스타탄생이 이루어진다.

관객을 환대하는 영화는 그것이 보유하는 진실성 만큼의 허구성이

있다.그 허구가 비록 우리 삶을 위안하는 것일지라도 나는 이게 마음에

걸린다.아름다운 로맨스,환상적인 성공담 이면에 깔린 순진한 세계인식,그

작위성.지나치지 않느냐고?

그건 내가 할리우드에 묻고 싶은 말이다. (영화평론가) 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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