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등소평의 일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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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의'작은 거인'덩샤오핑(鄧小平.92)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5척단구로 12억 인구를 호령하면서'중국식 사회주의'를 주장했던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는 마침내 다음 세대 지도자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눈을 감았다.2000년까지홍콩.마카오는 물론 대만까지 하나로 통일하려고 했던 그의 야망은 채 완성되지 못했다.그러기에 鄧은 병든 노구에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의 가속화를 촉구하는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나서는등 마지막까지 중국의 미래를 위해 혼을 불살랐다.중국 은 이제 鄧의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어느 나라도 무시할 수 없는 대국(大國)으로 우뚝 서게 됐다.일찍이 마오쩌둥(毛澤東)이 鄧을 가리켜“무슨 일을 맡겨도 마음이 놓이는 동지”라고 평했듯 鄧은 항일(抗日).국공(國共)전쟁때엔 빼어난 군사전략가로,정권 수립뒤엔 실무행정가와 정치지도자로 수완을 발휘했다.鄧의 일생을 조명해 본다. [편집자註]

21년 프랑스 파리 유학 당시 17세의 덩샤오핑.

40년 팔로군(八路軍)사령부 앞에 서있는 덩샤오핑.맨왼쪽은 주더(朱德).

79년1월 중국 지도자로서 첫 방미 당시 백악관 발코니에서 카터대통령과

함께.

81년9월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공군시범비행을 바라보고 있는 덩샤오핑.

94년 음력설인 춘절(春節)을 맞아 상하이에서 가족들과 자리를 함께 한

모습.로부터 장남 덩푸팡(鄧樸方),우방궈(吳邦國)상하이시 당서기,둘째딸

덩난(鄧楠),덩샤오핑,막내딸 덩룽(鄧榕),부인

주오린(卓琳),황쥐(黃菊)상하이시장,장녀

덩린(鄧林).

막내딸과 손자와의 晩年

덩샤오핑은 세번 결혼해 세번째 부인 주오린과의 사이에 2남3녀를

두었다.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덩샤오핑은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말년에 막내딸 덩룽과 함께 손자를 보살피고 있는 모습.

毛澤東 오른팔

59년 4월 마오쩌둥이 주재하는 공산당 수뇌부회의에 참석한 덩샤오핑의

모습.

金日成과 함께

78년9월 덩샤오핑은 북한을 공식방문했다.김일성 주석이 도자기화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軍 사열

84년 중국 정권수립 기념일인 10월1일 천안문광장에서 육.해.공 3군을

사열하는 덩샤오핑.그는 한번도 정식 군인이 아니었으나,군은 그의

고향이자 권력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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