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유감>연극 '유리동물원'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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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현실의 모사를 넘어서는 연극.

여러가지 이유로 마음이 혼돈스러운 요즘 현대의 고전이라 불리는 테네시 윌리엄스의'유리동물원'(황동근 연출.동숭홀)이 무대에 올라 반갑기 그지없다.이 연극은 쇼킹하거나 극적인 사건도 없고 스토리가 변화무쌍하지도 않지만 재치와 깊이를

겸비한 서정적 작품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한가족의 보금자리인 초라한 아파트가 보인다.아파트는 무대안과 양 측면에서 음침한 벽,늘어선 전기줄등에 둘러싸인채 어두운 조명을 받으면서 가족의 갇힌 내면과 조화를 이룬다.현실과의 괴리감을 가지고 각기 다른 자기세계

에 포로가 되어 살고있는 세사람의 고립된 공간이 무대장치와 소품에서 사실적.표현적으로 그려진 것이다.

재즈를 주로 한 음악도 1930년대 경제공황기 아버지가 부재중인 미국 하층계급을 나타낼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일상에서의 심리변화를 증폭,연결시켜준다.

출연배우 네사람은 외형적으로 극중인물과 닮았다.하지만 서로 다른 현대인의 유형적인 인물이 보다 명백히 구분되게 연기되어 그들의 관계변화로 이어졌더라면 각각에 대한 공감과 성찰은 물론 그들간의 심리적 갈등이나 모진 인연이 더욱 깊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속에 젖어살며 잔소리를 퍼부어대는 어머니는 변덕부리듯 심리적 변화가 큰데 비해 무대에서는 너무 차분하게 칭얼대는 듯하다.내성적.자폐적이고 유리동물들과 낡은 축음기에 매달려 사는 로라는 너무 예뻐서 부서질듯 떨리

는 모습이 미약하다.이들을 부양해야할 의무와 이들로부터 탈출하고픈 욕망 사이에서 번민하는 톰의 연기도 선이 약하다.

그래서 이들이 기다리던 신사(어머니)이자 짝사랑의 대상(딸)인 짐(톰의 친구)의 방문에서 그의 실체-현실의 야망을 실현하며 행복하게 사는-와 떠나는 모습이 세사람을 좌절하게 하는데 설득력이 부족해졌다.

최준호〈연극평론가.연극원교수〉

<사진설명>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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