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돼 내 힘으로 세상 살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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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오피스텔. 20평 남짓한 카페처럼 꾸며진 곳이었다. 이은진(31)씨가 조심스럽게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커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이은진씨는 손님 역을 맡은 강사 이정숙(26)씨와 눈을 마주치며 웃으며 말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씨는 지적장애(3급)를 가지고 있다.


이씨는 여성부가 장애인의 사회진출을 돕기 위해 10월 1일부터 10주간 마련한 바리스타(커피전문가) 양성과정(무료)을 다니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총 200시간으로 구성된 이 과정에는 이씨 외에도 10명의 여성 장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씨는 장애인복지관의 소개로 이곳을 다니게 됐다. 이씨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고교 졸업 후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였다. 그가 직업훈련을 받기 시작한 건 올봄이다. 바리스타 과정을 시작한 뒤로는 수줍음도 없어지고 말수도 늘었다. 커피 이야기가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인다. 이씨는 “이제 엄마와 작은 커피가게를 하고 싶다”고 꿈을 얘기했다.

장애가 있다고 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직업을 갖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장애를 가진 이들의 소박한 꿈이다. 하지만 배움의 기회는 드물고 현실의 벽은 높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문가은(18)양은 이 과정에 오는 것부터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처음 바리스타를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 복지관에서도 망설였다. 두 달간 교육 후 문양은 모두의 예상을 깼다. 원두를 갈아 기계에 담고, 종류별로 부재료를 섞은 후 시간에 맞춰 커피를 만드는 섬세한 과정이 문양에겐 큰 도전이었다. 실패를 거듭해도 수없이 반복하자 몸이 먼저 익혔다. 문양은 커피를 만들 때면 세상이 멈춘 것처럼 집중한다.

교육을 맡은 사랑의복지관 황명현 팀장은 “장애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 더디지만, 시간을 주고 기다리면 충분히 자기 관심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에게 직업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배지은(23)씨는 세상과 소통하는 데 서툴다. 겉으로 봐서는 장애를 알기 힘들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졸업 후 1년간 일했던 편의점에서도 겉돌기만 했다. 바리스타에 대해 알게 된 건 지난해 즐겨본 TV 드라마를 통해서다. 막연히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던 배씨는 이제 10여 가지 커피를 척척 만든다. 얼마 전 한국커피교육협의회가 시행하는 바리스타 자격증 필기시험에도 합격했고, 요즘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남아서 실기시험을 준비한다. 표정을 찾기 힘들었던 배씨의 얼굴에도 요즘 옅은 미소가 생겼다. 최현정(25)씨는 배씨와 같은 자폐성 장애를 가졌지만 관심사와 성격은 다르다. 집중하기 힘들고 종종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지만 꾸미고 놀기 좋아하는 20대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3년째 일하는 최씨는 요즘 커피 배우는 시간만 기다린다. 주방에서 설거지와 재료준비만 하느라 지루했던 일상에도 활력이 생겼다. 최씨는 커피에 우유 거품으로 모양을 내는 ‘라테아트’에 관심이 많다. 새로운 배움은 미래에 대한 계획도 바꿨다. 최씨는 “커피를 배워 자립하면 대학에 가서 유아교육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김은하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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