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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더 이상 방치 못할 대학의 에너지 낭비 불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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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부의 저이산화탄소(低CO2) 녹색성장 선언 이후 정부부처·지자체·기업·사회단체 등이 녹색성장에 참여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학 사회도 예외일 수는 없다. 전국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 포함하면 300여 개에, 구성원도 300만 명이 넘을 정도인 대학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2006년 국내 190개 에너지 다소비 기관 중에 23개 대학이 포함됐고, 서울대는 5위를 차지했다. 서울대의 한 해 전기요금은 100억원대에 육박한다. 최근 4년 만에 전기에너지 사용량이 두 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물 사용량도 연간 180만㎥에 이른다. 에너지와 물 사용량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 확보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러한 경향은 전국의 주요 대학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대학에서 에너지소비 증가 추세는 국가 전체 에너지소비 증가율을 크게 상회한다. 대학도 에너지 수요 관리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물론 대학에서 다량의 에너지 소비가 충실한 교육과 경쟁력 있는 좋은 연구에 잘 사용되고 있다면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강의가 없음에도 불 켜진 강의실, 24시간 켜져 있는 사용자 없는 컴퓨터 등은 국가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와는 동떨어진 에너지 풍요 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이 직장인 나 자신도 이런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경제위기의 한파 속에 화장지 한 장, 전등 하나 아끼는 가정·기업과 비교하면 국내 대학 에너지 사용에 대한 불감증은 부도덕하다고 할 수준이다.

그렇다고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는 대학 사회의 무감각에 대해 대학 구성원의 개인적인 노력 부족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교육용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값싸게 공급해 교육기관을 지원해 주는 방식도 한몫하는 듯하다. 무엇이든 제대로 비용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원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교육기관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지만 지원방식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에너지 문제를 종합적으로 접근·관리할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은 단열기술 발전에 따른 혜택을 실감하고 있다. 이중창 등으로 설계된 아파트는 상당한 수준의 단열이 이루어져 겨울철조차 큰 난방 공급 없이 지낼 수 있을 정도다.

반면, 대학 사회는 크게 발전한 에너지 절약 기술을 모르는 듯 신축 건물을 지을 때에도 에너지 사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대학원 연구실에서도 추워서 겨울 방풍용 비닐막 설치가 필요할 정도다. 하물며 지난날 에너지 사용에 대한 초보적인 고려도 없이 부실하게 지은 수많은 대학 건물에서는 냉난방에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위기 대처를 위한 전 사회적 노력에 후발 그룹인 대학 사회가 동참하기 위해 최근 몇몇 대학에서 그린캠퍼스 추진위원회를 결성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특히 고려대의 차 없는 캠퍼스 운동이나 조선대의 대학기숙사 태양에너지 공급시설 설치 계획은 눈에 띈다.

지난 10월 서울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반으로 절감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서울대 친환경선언 선포식’도 열었다. 많은 대학도 유사한 녹색경영선언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자연과의 공생과 대학 구성원 삶의 질을 고려하는 에코캠퍼스도 고려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군사독재시대에는 사회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고, 최근에는 학문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으며, 성장동력산업에 필요한 핵심 산업기술의 산실로서도 놀라운 성장을 하고 있다. 미래사회의 예비 지도자들을 육성하고 배출할 대학 사회도 국가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는 녹색 캠퍼스 경영에 동참하는 것은 시대적 당위다.

윤제용 서울대 교수·화학생물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