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속의문화유산>4.종묘정전과 마당 그리고 비무장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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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올해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얼마 전 공표된 10가지 사물들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어쩐지 그 10가지 모두가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국한된 듯해 정신가치를 더욱 높이 사온 우리의 문화유산이 과연 그러할 뿐인가에 대한 다소의 의심을 가진 적이 있다.이른바 우리 민족의 정서에 깊이 드리워진 한(恨)이라든가,혹은 조선 5백년을 지탱케 한 선비정신등 보다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것들이 우리가 자랑스럽게 가꿔야 할 더욱 가치있는 문화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인 것이다.

더욱이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오랫동안 침략과 수탈의 오욕된 역사를 가져야 했던 우리고 보면 남아있는 몇 안되는 것들에서 세계 최초.최대들을 찾는 일이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있게 만든 문화의 켜를 적시하는 일이 오히려 우리의 정체성 확인에 더욱 긴요함을 믿는다.

많은 건축유형 파행시킨 종묘 나는 이러한 관점을 가진 건축가의 입장에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대표적 문화유산 세가지로 우리의 근원을 알게 해주는'종묘의 정전'과 우리의 삶을 있게 한 건축속의'마당',우리의 이 시대 기록이 고스란히 남은'비무장지대'를 들고자 하며 이들을 건축의 원형과 건축형식의 개념,그리고 건축환경의 소중한 보물로 적시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태조 즉위 4년(1395년)에 창건된 종묘정전은 수차례 중건을 통해 태조.태종.세종.세조등 19명의 왕과 30명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주실 19칸의 장중한 건물이다.무형문화재 56호인 종묘대제가 매년 장엄하게 올려지는 국보227호로,95년엔 동양 유교 제의를 5백년간 지켜내려 왔다 해 유네스코에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의 자랑스런 건축이다.

또한 전통건축의 분별없는 복원을 통해 만들어진 박제된 현대의 고건축과 달리 이 건축은 현재에도 기능을 수행하는 살아있는 건축이다.하지만 내가 이 종묘 정전을 가장 중요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꼽는 이유는 전주 이씨 종약원에 의해 거행되는 정통 유교의식이나 지엄한 조선시대 왕들의 신위를 모셨다는데 있지 않다.더구나 그 건물의 조형미라든지,그 오래된 역사성에 있는 것도 아니다.아예 이 건물 자체는 그 장중한 길이 말고는 별 특별한 데가 없다.

그러나 수많은 건축 유형을 파생케 한 이 건축은 본질적이다.이 건축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죽음에 대한 생각-죽은 자의 영혼은 불멸해 산 자의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한다는-에서 비롯된 건축이다.따라서 질박하게 생긴

길이 1백17의 이 건물이 북에 앉아 남향하고 앞에 석조의 넓은 기단이

솟아올라 그 주위로 담장이 둘러쳐져 이룬 직사각형의 엄정하며 단순한

조영(造營)은 아마도 우리 건축의 원형질이다.특히 남3문을 지나고

중앙부를 향해 완만한 경사로 올려진 석조 기단을 올라 정전 건물을

대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가슴 울리는 긴장은 우리들 산 자를

긴 침묵 속으로 몰아넣으며 옷깃을 여미게 한다.한 일본인 건축학자는 이

종묘 정전을 두고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 했던가.내용과 형식이 완전한

합일을 이룬 이 불멸의 건축은 우리 한국인의 귀소(歸巢)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채워주는 영원한 고향이며 우리의 동일성을 확인시켜주는 의미있는

장소다.우리의 전통 건축을 서양처럼 기둥이나 지붕같은 요소의 양식으로

분석.분류해 한국 건축의 특성을 말하는 일은 온당치 않다.물질적

풍족보다 청빈낙도를 동경한 우리 선조들이 만든 우리의 건축은 국악이나

전통회화가 음과 음의 사이나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집 생명을 길게 해주는'마당' 즉 단일 건물보다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 요소며 개념이 된다.이 마당은 서양인들이

그들의 집과 대립적 요소로 사용한 정원과도 다르며 단지 기후에서 비롯된

중동의 중정(中庭)과도 다르고 관상의 대상으로 이용되는 일본의 정원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주거에서 뿐만 아니라 사찰이나 서원.궁궐등 모든 건축형식에서 그

중심에 서는 우리의 마당은 때로는 작업공간으로,때로는

공용공간으로,혹은 축제의 공간으로,심지어 사유를 위한 장소로까지

변형돼 쓰이기도 한다.서양인의 눈에는 그냥 남겨진 이 비움의 공간은

집의 생명을 길게 해 가족공동체를 확인시키고 사회공동체를 공고히 해

우리의 주체를 이루게 하는 우리의 고유한 건축 언어며 귀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이다.

김원일의'마당 깊은 집'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이층 양옥집이

초라한 나의 삶의 족적을 딛듯 그 마당에 우뚝 서게….” 우리의 전통적

마당을 메워 국적불명의 공간과 집을 지으면서 우리의 공동체는

무너져내린 것이 아닐까.이제라도 오랫동안 우리 의식의 중심에 있던

문화유산인 우리 마당을 우리의 주거와 삶 속에 회복시키는 일이,그리하여

우리 마당의 문화적 가치를 계속 후대에 전하는 일이 부서진 우리의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도 더욱 절실하다.

이 시대의 기록 비무장지대 우리 산하의 빼어난 아름다움은 자연이 준

천혜이긴 하지만 이를 두고 문화유산이라고 하지는 않는다.그것은 신의

작업이지 인간 삶의 기록과 흔적으로 인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어쩔 수 없이 풍부한 자연환경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비무장지대는 우리 시대가 만든 문화며 우리의 슬픈 사연이 이곳 저곳에

기록돼 있는 현장이다.4㎞의 폭에 2백48㎞의 길이,3억평에 달하는 방대한

넓이의 이 땅은 개발 지상주의자들이 아직은 갈 수 없는 곳이다.따라서

곳곳에 지난 삶의 기록이 화석처럼 굳어져 있고 지난 50년간 자유롭게

살아 숨쉰 자연생태가 보존된 우리의 마지막 옥토며 우리 자손들의 번영을

약속하는 신선한 황금의 땅이다.문화유산이나 유적이 골동적 가치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한 시대의 이념갈등이 빚어낸 희귀한 자연인

이곳은'현대의 유적'인 것이다.그러나 몇년전부터 몇몇 예술가에 의해 이

땅의 존재가 가끔 부각되더니 남북관계의 변동을 예상한 듯 요즘은 무슨

개발지원법등의 제정 움직임까지 보이면서 이 땅을 서부시대의

엘도라도처럼 인식하는 것이 못내 불안스럽다.나는 이 땅을 개발할 우리의

문화적 능력과 자격에 회의적이다.믿기로는 이 땅은 우리의 격조높은

문화에 대한 사랑을 다시 회복할 우리의 후손들을 위한 땅이며 그들의

자산이지 못난 삶을 산 우리의 몫이 아니다.비무장지대 개발금지법을

차라리 제정해 이 현대의 유적을 우리의 뇌리에서 지우는게 현명한

처사일지 모른다.

<사진설명>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도 불리는 종묘정전은 태조와 세종등 19명의 왕과

30명의 왕비 신위를 모시고 있는 주실 19칸의 장중한 건물.한국인의

귀소(歸巢)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채워주는 영원한 고향이다.

<사진설명>

오랫동안 우리 의식의 중심에 있던'마당'을 회복하는 일은 우리의 주거와

삶,그리고 우리의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사진설명>

비무장지대는 자연상태가 그대로 보존된 우리의 마지막 옥토이고 자손의

번영을 약속하는 황금의 땅이며 우리 시대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현대의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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