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필링>또하나의 영화도시 佛클레르몽페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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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월 31일부터 2월10까지 프랑스에서 열리는 클레르몽페랑 영화제에 다녀왔다.이 영화제는 단편영화의 칸영화제라고 생각하면틀림없다.고작 9일간 열리는 영화제에서 프랑스 단편영화 78편과 국제 단편영화 76편의 경쟁부문이 있으며,매년 특별 히 열리는.오마주(homage)'부문에서 올해는 .판타지'분야를 신설하고 데이비드 린치나 조지 루카스.팀 버튼의 단편영화에서부터가장.환상적'인 소문속의 걸작들과 미지의 작가들을 망라해 67편을 선보였다.
영화제는 또한.주류영화에 반대하는'비상업적인 단편 영화들만을위해 마련한.마이너리티'부문에서 올해는.아메리카 인디언 영화'를 상영했다.
여기에서는 인디언을 다룬 미국영화가 아니라 말그대로 인디언 혈통을 가진 작가들이 만든 인디언에 관한 영화들이 상영됐으며,인디언계 영화작가를 경쟁부문 심사위원중 한명으로 초대하기도 했다.그리고 이 영화들이 상영되는 동안 별도로 단편 영화의 국제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이런 국제단편영화제를 이렇게작은 도시에서 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것이었다.클레르몽페랑은 프랑스의 도시를 연결하는 그 유명한 TGV철도도 지나지 않으며,인구도 45만명에 불과한 작은 시이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지난해에는 영화제 기간의 관람객수가 무려 11만명에 이르렀다.아무리 많은 초대손님이 있다 할지라도 인구의 4분의 1이영화를 보러간 셈이다.단편영화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상업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대답은 아주 간단한 곳에 숨어 있었다.클레르몽페랑 영화제를 끌고 가는 것은 세가지 힘이었다.그 하나는 영화제위원회의 헌신적인 노력이었다.모두 14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말 그대로 하나의 공동운명체처럼* 보였다.아무도 직함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누구도 이 자리를 자신의 출세를 위한 기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68세대'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며,이것을 자신들의 문화운동의 계속된 싸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개혁은 끝나지 않았으며,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회 곳곳에서 진지전을 계속 수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각 도시의 문화행사 지원을 공문화한 프랑스 헌법조항이다.각 도시는 문화행사를 지원하지 않으면 불법이다.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물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능동적인 관객들의 참여였다.그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축제며,마땅히 누려 야할 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화제 내내 공공기관 건물들에서 열렸으며,그곳 입구에는 대부분 그러하듯이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인.자유.평등.박애'가 1프랑동전 앞면에서 처럼 씌어 있었다.클레르몽페랑은 정말로 영화제를하나의 축제로 만들 줄 아는 보기 드물게 성공 한 페스티벌이었다. 그곳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영화에 관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은 다녀와야 할 곳이었다.행복이 가득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내가읽은 고국의 소식은 한보기업과 관련해 차례로 구속되 고 있는 정치인들의 얼굴이었다.이런 제기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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