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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과 송두율은 민족 문화자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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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3월부터 올 10월까지 지속되는 '2004 통영 국제음악제'는 박정희 시대에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르고, 국외로 추방되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고 윤이상 선생님을 추모하는 국제음악제다. 우리는 살아서 추방된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혼을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삶의 양식으로 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윤이상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서 세계적 석학으로 37년 만에 조국 땅을 밟은 송두율 교수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수백, 수천, 혹은 수만명의 삶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송두율 교수 재판의 1심 판결 이후 주한 독일대사관이나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보여주는 것처럼 오늘날의 '국가보안법'은 단순히 한 개인의 생명이나 삶을 위협하거나 소수의 진보적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보복의 차원을 넘어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파괴하고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도록 만드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오늘날의 '국가보안법'은 어떤 형태의 '국가'나 어떤 형태의 '개인'도 '보안'할 수 없다. 오늘날의 '국가보안법'은 오직 모든 형태의 '국가'와 '개인', 그리고 '집단'을 파괴할 뿐이다.

오늘날을 흔히 문화의 시대라고 부른다. 정치의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국민국가의 건설이었고, 경제의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투자와 생산을 원활하게 하는 민간자본의 형성이었으며, 문화의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개인의 창의성과 집단적 삶의 생산성을 위한 다양성의 형성이다. 그러나 강력한 국가의 건설이 민간자본의 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거대한 민간자본의 형성이 국가와 결합하여 개개인의 창의성과 집단적 삶의 생산성을 위한 다양성의 저해요인이 되는 역설을 낳기도 한다. 근대 자본주의의 또 다른 역설은 가장 먼저 등장한 정치가 경제를 포괄하고 경제가 문화를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늦게 등장한 문화가 경제와 정치를 포괄한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문화의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치의 시대에 만들어진 근대적 국경의 개념뿐만 아니라 경제의 시대에 만들어진 자본주의적 질서도 깨어지고 새로운 문화적 연대의 틀, 즉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을 포용하는 생태적 세계주의를 토대로 한 지역연합이나 연방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창의성과 집단적 삶의 문화적 생산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정치의 시대에 형성된 국가주의(nationalism)와 경제의 시대에 만들어진 제국주의적 국제질서(internationalism)이다.

'국가보안법'은 근대 국민국가를 토대로 한 국가주의의 산물이며, 냉전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한 제국주의적 국제질서 속에서 가장 맹위를 떨친 법률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주의의 산물인 동시에 식민주의(colonialism)의 산물이며, 반쪽짜리 국가로 국제질서에 참여하여 독재와 군사정권을 유지시키고 연장한 법률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국가보안법'은 태생적 한계를 지닌 식민주의와 서구적 근대화를 빌미로 한 사대주의를 강화할 뿐이다. 고 윤이상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송두율 교수는 우리 민족의 문화적 자산이다. 하루라도 빨리 송두율 교수를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우리의 문화자산을 세계인들과 더불어 활용해야만 한다.

장시기 동국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