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모자 뜨개질’ 전도사 고재영씨

중앙일보

입력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회사 동료들 한마음 동참


“한코 한코 정성껏 뜬다”는 고재영씨는 “세아이의 아빠여서 캠페인에 참여하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사진_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너무 빡빡하지 않아?” “바늘을 하나 빼고 뜨니까 괜찮을 거야.” “바깥뜨기 맞나?”“아니, 안뜨기.” 지난달 25일 외국계 광고회사인 레오버넷코리아 사무실(종로구 관훈동). 일찌감치 점심 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았다. 노랑·분홍·파랑…. 알록달록 털실이 놓인 책상, 직원들의 어설픈 손놀림, 뜨개바늘을 손에 쥐고 나누는 대화-. 이곳에선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 회사는 지난 10월부터 국제아동권리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www.sc.or.kr)’이 벌이는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캠페인은 일교차가 심해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신생아를 살리기 위한 것.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중 한 해 400만 명이 생후 1개월 안에 죽는다. 폐렴 항생제, 탯줄을 자르는 살균된 칼 등 간단한 물품이 부족해서다. 저체온층도 한 원인이다. 털모자는 이러한 신생아의 체온을 유지해주는 데 쓰인다. “아프리카의 일교차가 심하다는 사실을 이 캠페인을 통해 처음 알았어요.”회사에 ‘뜨개질 바이러스’를 퍼뜨린 고재영(40·크리에이티브 디렉터)씨의 말이다.

고씨는 지난해 아내(최순옥·36)가 참여를 권유할 때만 해도 시큰둥했다. 워낙 시간에 쫓기는 광고업계에 몸담고 있다보니 뜨개질을 위해 짬을 낸다는 것은 애당초 자신과 거리가 멀다고 제쳐뒀다. ‘남자가 무슨’이란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소일거리를 찾은 듯 반기는 어머니(65)와 아내 곁에서 고씨도 슬금슬금 뜨개바늘에 손을 댔다. 가족이 모여 뜬 모자가 아프리카 신생아들에게 전해 졌다는 소식에 뿌듯함을 느꼈다. 당시 아내가 셋째를 임신중이어서 의미도 남달랐다. 올해엔 고씨가 캠페인 소식을 먼저 접했다. 직장 상사였던 최혜정(45)씨가 지난해 세이브더칠드런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인연의 끈이 됐다.

“세계 빈곤어린이를 돕기 위한 기구 가운데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직 인지도가 낮아요. 그만큼 참여자가 적죠. 회사 차원에서의 참여를 제안한 이유에요.”전체 공지를 통해 신청한 직원들과 함께 우선 모자뜨기 키트 70개를 구입했다. ‘체계적으로 지원하자’는 의견에 따라 회사는 캠페인 홍보물을 제작해 전달했다. 여사우들은 “10년 만에 해본다”며 반색했다. “어떻게 뜨개질을 해?” 낯설어하던 남자 직원들도 하나 둘 손에 뜨개바늘을 잡았다. 주로 게임이나 웹서핑으로 보내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뜨개질하는 직원이 늘었다. “손에 설어 첫 단 뜨기만 두 번째 하고 있다”는 이준석(32아트디렉터)씨는 “안뜨기와 바깥뜨기 두 가지 기술만 익히면 돼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했다. “코가 빠지는 난감한 상황에선 여직원들의 도움을 받죠.”남자 직원 사이에선 꽤 뜨개질을 잘 하는 편이라는 고씨는 “단순한 기부가 아닌, 정성과 시간을 들이는 일이어서 더욱 마음이 끌린다”고 전했다.
“요즘엔 한 코 한 코 떠가면서 지난 1년을 돌아보게 돼요. 한해 마무리로 더없이 뜻 깊은 일 아닌가요?”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털실·줄바늘 등으로 구성된 키트는 1만원. GS이숍과 GS25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완성된 모자는 반송용 봉투에 담아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로 발송하면 된다. 캠페인은 내년 3월 31일까지. ▶문의= 02-6900-4400

프리미엄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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