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한보삭풍'에 떠는 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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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본지,한보따린지 때문에 장사가 안돼요.이런 썰렁한 설은 처음이에요.”“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젠데 너무 혼동돼 있어 나도 걱정이에요.”(6일 새벽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 청과상들과 李壽成총리가 나눈 대화) “지난해 이맘때쯤엔 지방에서 올라온 버스 1백여대로 시장근처에 발디딜 틈이 없었어요.올핸 30대도 못되는 것같아요.”“앞으로도 당분간은 이렇게 어려울텐데 큰일입니다.”(5일 오전 남대문시장에서 金英男사장과 자민련 金鍾泌총재가 나눈 대화) “이당 저당 따로따로 오지말고 국회를 열어서 한꺼번에 대책을 마련해 주세요.제철소가 살아야 업체가 살고 주민이 살 것 아닙니까.”(4일 신한국당 한보사태진상조사위에 요청한 당진군 주민대책위원장) .한보 삭풍(朔風)'에 한국의 설이 떨고 있다.겹친 추위에 아래윗니가 부딪치는 소리는 이렇듯 당진에서,남대문시장에서,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부터 울리고있다. 우리경제를 파고드는 한기(寒氣)는 어디도 예외는 아니다.“지난달 말에는 위기였어요.일본은행들이 여기 한국은행들에 단기자금을 잘 대주지 않아 은행의 결제가 막힐 뻔했지요.서울에서한은총재가 기자회견을 하자 겨우 돈이 풀렸어요.”(6 일 일본주재 한국대사관의 경제담당자) 삭풍은 나라안팎으로 거세지고 있다.뉴욕.런던의 금융가에서는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을 내리느니 마느니,대출금리를 올리느니 마느니 우리 자존심을 한참 꺾고 있다.1월 한달 무역적자가 35억달러로 불었어도 아예 동상이 걸렸는지 우리의 감 각은 무덤덤하다. 지금 한보 회오리속에서 경제가 이렇게 요동치는 데도 우리사회의 중심세력은 거의 속수무책인 것같다.여야정치권은 국정조사특위를 열지 못하고 있고 재경위.통산위 얘기는 꿈에도 들리지 않는다. 정부도 어정쩡하기는 마찬가지인 것같다.당연한 일이지만 신한국당 이상득(李相得)정책위의장과 오인환(吳隣煥)공보처장관은 최근 국민의 마음을 한보사건에서 떼어내 경제는 그런 대로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협의했으나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 다고 한다. 吳장관은“정부도 고민하지만 철저한 검찰수사로 국민의 울화가 풀리지 않는 한 방법은 없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대통령.야당총재 집사장(執事長)의 소매에까지 불이 타들어가고있으니 한보사건이 핵폭발인 것만큼은 틀림없다.그 충격속에서 우리사회.우리경제가 좌표를 잃고 있다.과연 그 충격파 때문에 경제가 수렁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가.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과 언론등 사회중심그룹이 사건수사와는 별도로 경제를 되살리는 쪽으로 정신을 바짝 가다듬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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