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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관춘선, 손님 1명 들어오자 점원 7명이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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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28일 오후. 중국 최대의 전자제품 집산지인 베이징(北京) 중관춘(中關村). 여느 때 같으면 주말 분위기가 넘쳐날 금요일 저녁 시간이지만 쇼핑객이 별로 없었다. 수백 개의 가전제품 판매장이 몰려 있는 ‘중관춘 E 세계’ 빌딩 입구를 들어서자 매장 직원들이 너도나도 몰려들었다. “다거(大哥:큰 형님) 이쪽으로 오세요” “링다오(領導:지도자)님, 어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점원 자오(趙·21)는 “어렵게 매장으로 유인한 손님도 물건을 만지작거리다 돌아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중국 정부는 “내수를 대대적으로 부양해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를 정면 돌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공언이 무색하게 불황의 그림자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일주일에 노트북 한 대도 못 팔아”=노키아 휴대전화 매장에선 정복을 차려 입은 점원 7명이 남자 손님 한 명과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내방객보다 점원 숫자가 턱없이 많은 것이다. 맞은편 필립스 매장은 아예 손님이 없어 점원들끼리 잡담을 하고 있었다. 대만계 화숴(華碩:ASUS) 노트북 매장에서 일하는 한 점원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10월부터 손님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9월 이전보다 손님은 30% 줄었고 매출은 50%가량 떨어졌다”고 말했다.

일본계 후지쓰(孵뵨通) 매장에서 일하는 여직원 장(姜·20)은 낙담한 표정이 역력했다. “올 초만 해도 하루에 직원 한 사람이 한두 대의 노트북을 팔았는데, 요즘엔 일주일에 한 대 팔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그 옆 훙투싼바오(宏圖三胞) PC 쇼핑몰은 손님의 발길이 아예 끊겼다. 이 쇼핑몰의 판촉 직원들이 길거리로 나와 일본 소니 노트북의 가격을 최대 888위안 할인해주는 내용의 전단지를 돌렸다.

지난달 28일 오후 중국 최대 전자제품 집산지인 베이징 중관춘의 한 매장. 금융위기 이후 이곳의 내방객이 30% 이상 줄었다고 점원들은 전했다. 1000위안어치를 구입하면 300위안을 돌려준다는 문구가 보인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신제품도 할인=중관춘 빌딩에는 ‘1000위안어치를 사면 300위안을 돌려준다’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한 할인 공세다. 심지어 신제품을 20~30% 할인 가격에 내놓은 매장도 적지 않았다. 노키아와 LG전자 휴대전화 매장에는 ‘갓 출시된 신제품 할인 판매’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소니의 디지털카메라 사이버 샷 T700 모델은 10월 말 출시될 때 3000위안이었으나 불과 한 달 만에 500위안이 떨어진 2500위안에 내놓아도 찾는 사람이 드물다고 점원은 전했다. 삼성전자 노트북 매장에서 일하는 점원 장(張)은 쑤저우(蘇州)에서 조립된 17인치짜리 노트북 R710 모델을 1만3000위안에 팔고 있었다. 그는 “10월 말에만 해도 1만5900위안에 팔던 물건”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도 고쳐서 다시 써=‘중관춘 E세계’ 빌딩 지하 1층. 휴대전화 업체의 수리센터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신제품 판매 매장과 달리 이곳은 손님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릴 정도로 많았다. 중국이동통신의 회원전용 서비스코너(M-ZONE)도 붐볐다. 모토로라 휴대전화를 수리하러 왔다는 류(劉·20)는 “예전에는 최신 모델 휴대전화를 새로 샀지만 요즘엔 고쳐 쓰려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도 기존 제품을 고쳐 쓰는 알뜰 소비자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금융위기는 중국인의 소비 행태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임대료 못 내 문닫기도=중관춘 매장 주인들은 부동산 거품 때문에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고 불만스러워했다. 20㎡ 규모 매장의 월 임대료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약 8000위안이었는데 지금은 4만 위안까지 급등했다. 한 매장 주인은 “한 달에 컴퓨터를 100대 이상 팔아도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빌딩형 매장인 딩하오뎬쯔청(鼎好電子城)의 경우 점포를 비운 채 ‘임대’라고 내건 간판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빌딩 관계자는 “입주 점포 중 5%가량이 폐업했다. 임대료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중관춘(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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