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정권 잡고 친이·친박 갈등도 해결 못해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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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06면

-한나라당이 뭘 잘못하고 있나.
“우선 대북정책이 분명하지 않다. 과거 정권의 햇볕정책을 계승·유지하는 것인지 아닌지 어정쩡하게 하다가 이렇게 (남북 길이 막히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일시적 남북 경색을 감내하고라도 처음부터 분명하게 이전 정부와 다르다는 입장을 내세웠어야 한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특사를 보내자는 등 목소리가 각각인데 이게 벌써 보수 정당으로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거다.”

‘친정’ 한나라 보면 답답한 이회창 총재

-대북 특사에 반대하나.
“(목소리를 높이며) 그렇다. 반대한다. 지금 북한은 우리 정부가 유엔의 대북 인권결의에 찬성하고 민간단체가 북한에 삐라를 뿌리는 걸 문제 삼은 것이다. 지금 대북 특사를 보내면 ‘우리 잘못이니까 사과할게’라고 간청하러 가는 것밖에 안 된다. 말하자면 ‘진사(陳謝) 사절’이다. 지금 막혔다고 단박에 진사 사절을 보내는 게 과연 온전한 생각을 가진 것인가.”

-대북 삐라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삐라 때문에 북한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니 대북 부서는 힘들 거다. 그렇다고 그걸 막는 건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 처사다. 우리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삐라를 뿌리는 단체들이) 국내법을 위반했나, 헌법적 가치를 훼손했나. 통일부도 북한에 ‘자제 요청은 계속 하겠지만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나라인데 법으로 막을 수 없다’, 아 이렇게 얘길 해야지.”

“정당은 원래 좀 시끄러운 것”
-172석의 거여인데도 한나라당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거여가 됐기 때문에 더 정치를 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만큼 밀어붙이자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내부에서도 원내대표나 지도부에 대해 ‘왜 강단 있게 밀어붙이지 않고 그냥 이렇게 밀리느냐’고 나올 수 있고. 하지만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거든. 수가 비등비등하면 정말 박치기로 밀어붙이면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웃음). 하지만 여당, 특히 거여는 큰 눈으로 길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은 좀 야당의 요구를 들어줘 손해가 날 것처럼 보이더라도 길게 보면 그게 오히려 정국 운영과 정권에 유리할 때가 있다.”

-친이·친박 대립 등 당내 갈등이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나.
“허허…. 악영향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좀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원래 정당 내부는 그렇게 시끄러운 거다. 지금은 그게 제일 큰 문제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도 그런 시끄러운 문제가 항상 있었다.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했는데…. 이명박 정권이 제대로 일을 하려고 하면 이런 정도의 문제는 빨리 풀어야지. 한나라당도 모처럼 여당이 됐는데, 정말 각자의 소리(小利)를 탐하다가 대실(大失)하는 일이 없도록 잘 해야 한다.”

-‘박근혜 총리론’이라든지 박근혜 전 대표의 역할에 관한 의견도 분분한데.
“허허허…. 제가 지금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적절치 않은 것 같고.”
거푸 묻자 그가 한 호흡을 골랐다.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이나 이 시기를 결코 소홀히 봐선 안 된다. 정말 대한민국의 국운이 걸린 시기이기 때문에 목숨을 건다는 생각으로 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서로 달라지지 않을까.”

-‘거국 내각’이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총재에게도 그런 제의가 들어온다면.
“아니, 내가 만일 거국 내각 제의가 들어오면 하겠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꼴이겠나(웃음). 내가 거국 경제내각을 진작부터 얘기했지만 그건 우리가 들어가는 걸 전제로 한 얘기는 아니다. 경제는 경제 담당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당선인이 새 재무장관에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선임하자 단박에 주식시장이 달라지는 걸 봐라. 이명박 정부 경제팀으로는 경제 난국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 거국 경제내각을 만들어 국민의 신뢰를 모으면서 다시 뛰어야 된다.”

-개각이 늦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빠를수록 좋다. 경제가 위기 아닌가. 경제가 개각 시기까지 기다려 주고 그런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동력이 많이 떨어졌다. 모처럼 정권 교체를 한 정부가 이렇게까지 동력이 떨어지면 정말 중요한 이 시기에 뭘 하겠는가. 지금은 경제 비상 시기 아닌가. 거국 경제내각으로 중지를 모아 국민과 더불어 뛴다는 심정으로 팀을 짜야 한다.”

이 총재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한마디를 보탰다. “이 정부가 좌파 정부라면 저는 이렇게까지 충고하지 않는다.”

“충청당? 지역감정 없애려는 건 잘못”
이 총재는 지난 7일 정계 복귀 1주년을 맞았다. 무소속으로 지난해 대선 막바지에 출마해 15.1%라는 지지율을 얻었고, 자유선진당을 창당해 어렵게 교섭단체도 구성했다. “참 힘든 한 해였지만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것을 했다”는 그의 말 그대로다.

하지만 선진당의 한 의원은 기자에게 “총재님이 어떤 인물인데 ‘전국구 스타’가 지금 ‘충청당 맹주’ 역할이나 하고 있으니, 도대체 ‘제2의 자민련’이 되자는 거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선진당 관계자는 “사실 충청 기반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역구 14석이 가능했겠느냐”면서도 “좁은 지지기반을 가진 정당은 수명이 길지 못하다”고 걱정했다. 15대 때 돌풍을 일으켰던 자민련은 사라졌고, 17대에 약진했던 민노당은 현재 의석이 절반(5석)으로 줄어들었다. 이 총재는 과연 ‘충청의 맹주’로 자민련식 캐스팅보트를 즐기고 있을까.

-10·29 보궐선거에서도 3승을 거두고, 이제 충청 기반은 확실한 것 같다.
“그렇진 않다. 부단한 노력을 해야지. 뭐 ‘꽉 잡았다’ 이런 표현은 안 한다(웃음). 지난 총선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충청권은 석권했지만 전국 정당은 되지 못했다. 전국 정당이 소망이고 목표다.”

-충북에도 아직 뿌리를 못 내렸는데 우선 충북 진출이 목표인가, 수도권이 먼저인가.
“(크게 웃으며) 충북 지역에 우리 국회의원이 한 분밖에 없다. 충북에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충북도 어차피 충청권인데. 충청권 외의 지역에 교두보를 만들고 확산해 가는 게 목표다.”

-이 총재가 무소속으로 고생하다가 이젠 충청을 중심으로 다소 편하게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도 전국 정당을 목표로 하는 마음가짐에는 변함이 없다. 전국 정당으로 가야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전국을 싱가포르나 스위스 규모의 5~6개 광역 단위로 나누자는 ‘강소국 연방제’ 구상은 지역감정만 부추길 위험이 있는데.
“우선 지역감정을 없애려고 하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지역감정은 어느 나라, 어느 선진국에도 있다. 지역감정을 정치에 이용해 세력화하는 게 문제지 지역감정 자체는 아주 건전한 경쟁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자유선진당도 정치적 지역감정에 기반을 둔 거 아닌가.
“정당은 어차피 약간의 지역감정을 토대로 한다. 어느 정당이나 기반으로 하는 지역이 있다. 한나라당은 영남, 민주당은 호남, 우리는 충청이다. 이런 기반 위에서 전국 정당으로 도약한다는 것이다.”

-그런 기반이 전국 정당으로 도약하는 데 한계가 되지 않을까.
“(단호하게) 그렇게는 생각 안 한다.”

-창조한국당과 교섭단체를 구성한 건 당 정체성을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아니 그건 정말로, 좀 실례의 말이지만 뭘 모르는 소리다. 정책만 공조했다. 대운하 반대를 위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게 당 정체성과 무슨 관계가 있나.”

-한나라당에서 교섭단체 구성을 16석까지 낮추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근데 그게…될지 모르겠다. 상임위마다 1명 이상 의원을 배정할 수 있는 정당에는 교섭단체를 주자는 것이니까 일리는 있다. 야, 누가 생각했는지 참 머리 좋다 했는데(웃음), 됐으면 좋겠지만 거기에 막 목을 매고 그런 심정은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는 자유선진당이 전국 정당으로 나아갈지, 대전·충남당에 머무를지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 총재는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배가 열두 척 남았고 이순신이 살아있습니다)’라는 충무공의 장계에 전율을 느낀다고 했었다.

열여덟 석이 있고, ‘창’은 현역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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