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그랬지” 설레는 첫사랑의 공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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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03면

이런 사랑을 했었다. 열두 살 띠동갑 앞에 설레며 망설였고, 옛 사랑의 상처를 잊지 못하는 연인 앞에 토라지고 매달렸다. 불확실한 청춘은 때로 무기가 되고 자주 족쇄가 됐다. 첫사랑은 그랬다. 그렇게,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영화로 보는 강풀 만화, 그 세 번째 도전

인터넷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의 장편 만화가 세 번째로 영화화됐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순정만화’는 주요 예매 사이트에서 1위를 달리며 11월 27일 개봉했다. 영화 ‘바보’(2008년)와 ‘아파트’(2006년)가 평단과 대중의 외면을 받은 것에 비하면 순조로운 출발이다.

인터넷 다음 연재 당시(2003년 10월 24일~2004년 4월 7일) 총 페이지뷰 6000만, 1일 평균 페이지뷰 200만, 댓글 50만 회를 기록했던 ‘순정만화’는 만화가 강풀의 출세작이다. ‘파페포포 메모리즈’ ‘마린 블루스’ 등 다이어리 툰(diary toon) 일색의 웹툰 시장에서 장편 서사만화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바보’와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시즌 2ㆍ3의 타이틀을 달고 연재됐을 정도로 ‘순정만화’의 반향은 컸다. 세 작품은 각각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 중이고,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드라마로도 제작 중이다.

앞선 두 영화의 흥행이 부진하자 ‘강풀 만화는 영화화하면 실패한다’는 속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는 강풀 본인이 카메오로 출연하기까지 했고, 직접 리뷰를 통해 “자신 있다”고 호평했다. 그동안 영화가 원작과 너무 달랐거나(‘아파트’) 똑같아서(‘바보’) 실패했지만 이번 영화는 새로운 매체에 맞게 스토리와 캐릭터를 탈바꿈하되 ‘정서’는 비슷하게 지켜 갔다는 평가다.

순정만화를 영화라는 매체에 담는 방식으로 류장하 감독이 택한 것은 ‘멜로 영화’의 문법을 지키는 것이었다. ‘봄날은 간다’ 조감독 때 인연을 맺은 유지태가 서른 살 순수남 김연우를 부드럽게 연기했고, 이연희도 원작 속 왈패가 아닌 첫사랑의 추억을 자극하는 귀여운 소녀로 분했다. 주민등록증 발급을 매개로 소녀들의 성장을 풀어낸 것도 주효했다. 채정안ㆍ강인의 연상·연하 커플도 원작의 정서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드라마틱하게 엮어 냈다.

만화가 강풀의 강점은 대중성이다. 자신을 철저하게 대중 상업만화가로 정의하는 그는 “보통 소시민이기에 시대의 보편성과 호흡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 영화는 질색에다 ‘무한도전’과 ‘무릎팍도사’를 빠짐없이 챙겨 본다는 고백이 이를 증거한다. 그럼에도 ‘MBC 9시 뉴스’를 고정 시청할 정도로 사회의식이 뚜렷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를 담은 ‘26년’의 경우, 94학번으로 입학해 어지러운 대학 시절을 보냈던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이다. 대중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시대의 성감대를 톡 건드린다.

“만화 그리는 게 취미이자 직업이자 낙”이라는 그는 스스로 “정말 죽을 정도로 열심히 한다”고 말한다. 작품 펴내는 족족 영화ㆍ연극ㆍ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그는 실로 ‘21세기 허영만’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의 사랑과 정의에서 이야기를 풀어 가는 그에게 ‘동심천사주의’를 질타할 수 있을지라도, 멀티유스 콘텐트의 파워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오늘날 대중성의 현주소라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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