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카소’ 바스키아 그래피티 새 지평 열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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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05면

현재 미술계에서 미국 대통령 당선인 버락 오바마와 가장 비슷한 위치에 있는 작가는 아마도 줄리 머레투(38)일 것이다. 에티오피아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백인 교외 주택 단지에서 자란 여성 화가다.

- 아프리카계 미술가의 도전

건축적 공간들을 메타 차원에서 재해석한 ‘원격-투시’라는 대형 추상화 작업, 그리고 선머슴 같은 태도에 매력적인 외모로 일약 스타가 됐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유학하고 에티오피아 여성 지원 활동을 펴는 등 ‘문화·정치적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흑인 역할모델’로 대접받고 있지만, 사실 라이프 스타일이나 언어 습관은 전형적인 흑인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 올해 광주비엔날레를 이끈 오쿠이 엔위저(45)는 흑인으로서의 문제의식을 정통으로 계승한 국제적 큐레이터다. 나이지리아 태생의 미국인인 그가 2002년 독일 ‘카셀 도쿠멘타’의 총감독을 맡아 백인 작가들의 몫이었던 자리를 흑인 작가들로 채우자, 전시는 ‘전치된 권력의 풍경’으로서 비평적 효과를 발했다. 하지만 2008 ‘광주비엔날레’에서의 비슷한 작업의 결과는 그저 모호했을 따름이다.

1920년대 할렘 르네상스와 함께 등장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풍경화 등으로 근대 미술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이미 19세기 후반이었지만 ‘흑인의 삶을 대변하는 미술’이라고 할 만한 것은 1920년대 ‘할렘 르네상스’ 운동과 더불어 등장했다. 한국의 초기 민중미술과 비슷한 거친 구상화로 고단한 삶을 그렸다. 그러다가 7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성과를 거두자 비로소 현대 미술의 최전선에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베티 샤의 입체 작업 ‘제미마 아줌마의 해방’, 페이스 링골드의 퀼트 작업 ‘누가 제미마 아줌마를 두려워하나?’ 등은 대안 미술사 교과서에서 빠지는 일이 없는 소위 ‘흑인 중심주의’ 미술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정말로 새로운 흑인 미술은 데이비드 해먼스에서 비롯했다. 83년 ‘눈보라 폭풍의 공을 팝니다’는 미니멀 조각의 문법을 차용한 다양한 크기의 눈 뭉치를 노상에 늘어놓고 행인에게 판매한 묘한 작업이다. 당시는 주류 미술계로부터 외면당했지만 훗날, 80년대 초 뉴욕 미술을 대표하는 미적 성취로 칭송된다.

주류 미술계에서 성공을 거둔 최초의 흑인은 장미셸 바스키아다. ‘검은 피카소’로 불렸던 그는 외견상 전형적인 미국의 흑인이었지만, 문화적 정체성은 그렇지 않았다. 교양인인 아버지는 아이티 태생이었고, 어머니는 푸에르토리코계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에 능했다. 힙합 문화가 태동하던 시절, 일찌감치 그래피티(낙서화)의 가능성에 눈떴고, 80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그룹전 ‘타임스 스퀘어 쇼’에 참가해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흑인에 대한 주류 사회의 고정관념을 역이용한 작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심도 있는 흑인 정체성 연구는 90년대부터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보다 심도 깊게 다루기 시작한 것은 탈식민주의 연구가 주류 미술계를 강타한 90년대의 일이다. 93년 휘트니비엔날레는 흑인 차별의 문화적 기제를 탐구하는 작업에 주목한 최초의 대형 전시였다. 그 가운데 글렌 라이곤은, 백인 게이 작가인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흑인 누드 연작 ‘블랙북’을 재해석한 ‘블랙북의 여백에 적은 노트’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도록에 게재된 큐레이터 셀마 골든의 도발적인 글 ‘백색주의란 무엇인가?’는 보수적인 미술인들에게 충격파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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