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감기도 못걸린 9개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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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병주 사회부 기자

"성역없는 수사를 진행했다."

21일 오후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안대희 중수부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밝히면서는 눈물도 내비쳤다.

9개월이란 오랜 기간 엄청난 수사 인력을 동원한 이번 수사를 통해 검찰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데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된 혐의가 드러난 정치인 대부분이 17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거나 낙선했다. 이번 수사가 정치권 물갈이에 이바지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이 겪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심했다고 한다.

"수사를 위해서는 감기도 걸리지 말라"고 수사팀에 엄명(?)을 내렸던 安중수부장은 최근 심한 독감과 스트레스성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남기춘 중수부 1과장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날이 부지기수며 몸무게도 10kg이나 늘었다"며 힘들었던 수사 과정을 토로했다.

대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송광수 검찰총장이 수사팀에 보내준 전폭적인 신뢰와 격려에 수사팀의 열의가 합쳐졌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 주변 인물들과 거대 야당을 상대로 한 이번 수사가 공정성을 잃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자평했다.

게다가 "한나라당이 받은 것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던 이른바 '10분의 1'발언, 국회의 청문회,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 수사 착수 등도 수사팀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수사팀은 이날 발표문에서 '17대 국회 개원 이후 새로 발생하는 정치권 및 권력 주변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비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와 같은 원칙으로 엄정하게 처리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정치권과 기업인들은 과거의 잘못된 정치자금 수수 행태를 스스로 바로잡아 가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게 바로 지난 9개월 동안 수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분노했던 국민에 대한 사죄 방법이다.

문병주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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