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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 간호학과 55세 남학생 “졸업 후 의료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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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장차림 신사의 검은색 서류가방에 강의자료가 가득했다. ‘간호이론’이라고 쓰인 강의자료 곳곳에는 형광펜 자국이 선명하다.

성신여대 간호학과 졸업을 앞둔 이준헌(55·사진)씨는 27일 간호관리론 기말시험을 마쳤다. 내년에는 간호사 국가자격시험에 도전할 계획이다. 성신여대 간호학과는 이씨에게 3번째 대학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73학번인 이씨는 2002년 LG그룹을 퇴사했다. 이씨가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둔 것은 뇌졸중으로 투병하던 어머니를 잃고서다. 그는 “대학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보면서 아픈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떤 의술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어머니께 못한 효도를 남을 위한 봉사로 대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교 교사인 부인 윤영옥(54)씨가 말렸지만 이씨의 결심을 꺾을 순 없었다. 이씨는 “돈이 아닌 시간만 달라”며 아내를 설득했다. 2002년 경기대 평생교육원 침술사 1년 과정을 마친 이씨는 한의학을 배우러 혼자 미국으로 갔다. 학비와 생활비는 서울 개포동에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1억원으로 마련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2년제 한의학전문대학원 사우스 베이로에서 공부하면서 빠듯한 생활비 때문에 음료수 한 잔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주말에도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2005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한의사 자격증을 따 1년간 캘리포니아에서 진료했지만 의료봉사를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미국에서 한의사로 일하다 보니 간호사가 환자를 더 가까이에서 돌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씨는 미국 간호대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3년을 기다려야 된다는 대답을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이번에도 부인 윤씨가 “멀쩡한 한의사 직업을 버리고 왜 간호대에 입학하려고 하느냐”며 반대했다.

그는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에 있는 친척을 통해 국립의료원 간호학과에 원서를 접수, 2006년 3월 합격했다. 그 후 국립의료원 간호학과가 성신여대 간호학과에 통합되면서 그는 성신여대 최고령 남학생이 됐다. 지난해 결혼한 외동딸(28)보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다.

아내에게서 금전적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이씨의 약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 달 용돈 30만원은 학자금 대출로 조달하고 있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3개월 동안 중소기업에서 전자부품을 조립하기도 했다. 휴대전화도 없다. 그동안 이씨의 선택을 반대하던 부인도 남편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78년 대우실업에 입사하고 LG그룹을 퇴사할 때까지 직장생활 25년 중 15년을 해외출장으로 보냈다”며 “사랑하는 아내에게 무척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말했다. 미국행을 반대하던 장인·장모도 이제 이씨의 후원자가 됐다. 장인은 사위의 주사실습을 위해 기꺼이 옷소매를 걷는다.

이씨는 요즘 내년 1월 국가고시 간호사자격증 시험 준비로 도서관과 영어학원을 오간다. 그동안 대출받은 학비 600만원을 갚으려면 국가고시에 꼭 합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이모작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2년 동안 국내 병원에서 일한 다음 아프리카 등에서 의료봉사를 할 계획이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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