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미 대북정책 분명히 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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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바마는 지난 21개월 동안 선거운동 과정에서 ‘변화’를 앞세워 당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 배짱에는 어이가 없어진다. 오바마는 예비선거와 본선에서 상대방 후보로부터 노골적인 비난을 들으면서도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직접 대화를 추진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데 어떻게 대북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공약이 단순히 선거용이기 때문에 집권 후에는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그런 생각으론 오바마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북·미 간의 정상급 대화가 나온 이유는 오바마가 부시 대통령과 다른 대북 인식과 정책기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서둘러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고 걸맞은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 김대중 정부가 잘못된 대응을 하는 바람에 한·미 간의 엇박자로 곤경을 겪었다. 한국을 잘 아는 힐러리, 가이스너, 서머스 등이 각각 국무장관, 재무장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내정되었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이들이 한국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정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경제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가 어떤 변화를 추구할 것인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바마에 대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막연히 높은 기대를 거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객관적으로 전망하는 데 독약이 될 수 있다. 오바마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고, 그의 대선 승리를 환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추진해 나갈 정책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

 정부나 여당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가 잘 될 것’이라고 낙관만 해선 안 된다. 오바마 당선인의 정책이 우리 정부 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검토한 후 ‘한·미관계의 장래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국민에게 함께 들려줘야 한다.

정부는 또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과 관련해 한·미관계 외의 문제들로도 관심을 넓혀야 한다. 미국 내부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 지구적인 차원의 파급효과도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의 최대관심사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의 경우 오바마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마스터 플랜을 알아야 대처가 가능하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동북아 정책이나 미·중관계, 미·일관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한·미관계만을 보면 우리의 대응이 아전인수 격이 될 위험이 높다. 예를 들면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도 같은 비중으로 중국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직접적 역할을 더욱 강조할 것인가. 이에 따라 북핵 문제 해법이 달라진다.

앞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운 대외정책을 추진하면 정책분야별로 수혜 국가가 생기고, 불이익을 받는 국가가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정책변화에 따라 달라질 각국의 정책까지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나라들과 어떤 행보를 같이할 것인지에 대해 사전 포석을 해야 한다. 이는 미국에 대한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1분도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오바마의 말처럼 우리에게도 시간은 많지 않다.

김용호 인하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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