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예고 되는 '대중 독재'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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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대중은 독재자의 폭력에 억압당하기만 했는가? "'독재 대 저항'이란 이분법으론 독재가 유지되는 정황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수 대중의 암묵적 혹은 적극적 동의가 있었기에 소수 독재 권력의 유지가 가능했다는 해석이다.

*** 대중, 독재 통해 욕망 실현

임지현(한양대.서양사) 교수 등 국내외 역사학자 19명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책 '대중독재-강제와 동의 사이에서'(책세상, 588쪽, 2만5000원)를 출간했다.

이들은 1.2차 세계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독일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소련 스탈린주의, 스페인 프랑코주의, 프랑스 비시정권 체제 등에 대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개발 독재'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범한 대중의 암묵적 혹은 적극적 동의가 있었기에 독재가 가능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국가사회당 당수로 지명된 후 축하 받고 있는 광경(中). 사진 (左)는 스탈린, 사진 (右)는 무솔리니. [중앙포토]

이들의 분석은 한마디로 독재에 대한 책임을 대중에게도 묻는 방식이다. 소수 독재자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다수 대중은 면죄부를 받는 일종의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선 셈이다.

이에 대해 "독재의 본질을 아래로부터 새롭게 조명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다른 한편으론 "민중에게 책임을 떠안기려 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엇갈린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역사의 일직선적 진보를 신봉하지 않는다.

또 역사학은 심판의 학문이 아니라고 믿는다. 심판을 지향하며 도덕적 선을 독점했던 기존의 역사학을 이들은 오히려 비판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대중'을 특정 지도자에 의해 이끌려가는 하위 계급의 군중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이들이 볼 때 20세기 이후의 가장 큰 특징인 '익명의 대중 사회'에서 대중은 자신의 욕망을 독재자를 통해 실현해 가는 주체다.

그럼 '일반인들도 독재에 동의했다'는 선뜻 납득하기 힘든 이들의 문제제기가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책의 편집에 깊숙이 관여한 일본 근대 천황제 연구자 박환무(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상임 연구원)씨는 "공개와 토론의 정치문화가 아니라 다수결과 갈채의 정치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사회에서 대중민주주의의 본질 그 자체를 성찰해 보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람들로 하여금 책임과 권리의식을 망각하게 하는 대중독재는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독재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민중에 책임 넘겨" 비판도

임교수는 "소수의 사악한 가해자 대 다수의 선량한 희생자라는 이분법을 고집하는 민중적 도덕주의가 결국에는 '반도덕적'일 수 있다"고 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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