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 시시각각

고난을 넘어 별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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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여러분을 ‘트라우마 세대’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가 이름 지었다지요. 중·고생 시절 외환위기에 따른 부모의 부도나 실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자신들이 사회에 나올 때 또다시 금융·실물 위기로 최악의 취업대란에 맞닥뜨려야 하는 세대 말입니다. 그랬었구나. 그토록 커다란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왔구나. 그래서 그처럼 연수다, 인턴이다, 토익 성적이다, ‘스펙’ 갖추려 이를 악물었구나. 앞선 세대보다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하느라 젊음의 특권인 꿈마저 던져버렸구나. 미처 생각지 못한 짧은 소견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도 전 지구적인 경제 빙하기에 또 한번 사회적 좌절을 맛봐야 한다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이런 입발림 말고는 여러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 아프게 합니다. 한 줌 용기라도 쥐여주고 싶은데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놓을 말재주가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안 되는 건 다 그만두렵니다. 대신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제가 써먹던 방법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좋게 말해서 호기(豪氣), 나쁘게 말하면 허세라도 부려보는 겁니다. 포도 덩굴을 본 여우처럼 말이지요. 굶주린 여우는 포도송이를 따려고 몇 번이고 뛰어보지만 높아서 닿지 않습니다. 도저히 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여우는 자리를 떠나며 말합니다. “아직 덜 익어서 못 먹어.” 열 번, 스무 번 떨어진 게 내 모자란 탓이 아닙니다. 인사 담당자들의 눈이 삔 겁니다. 그런 회사엔 안 가길 잘했습니다. 인재를 몰라보는데 비전이 있겠습니까.

포기하라는 게 아닙니다. 패배 의식을 떨치란 말입니다. 게임을 잘못한 게 아니라 게임 룰이 잘못된 겁니다. 무력감도 던져버리세요. 편파적인 어웨이 경기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자, 내 무기를 바라보세요. 나만의 강점 말입니다. 그걸 최대치로 올리세요. 풀 죽은 노새가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당나귀라는 사실에 힘이 빠진 거지요. 하지만 불현듯 고개를 들더니 신나게 달립니다. “우리 어머니는 말[馬]이야. 그 피를 물려받은 나는 이처럼 빠르지. 지금은 어머니한테도 지지 않는다고.”

하필 노새에 비유해서 안됐지만 현실이 그런 걸 어쩝니까. 눈높이를 조금 낮춰보세요. 거기서 더 큰 기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낮춰 잡은 목표를 최종 목표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꿈을 향한 도약대일 뿐이죠. 미국 케네디우주센터에 가면 여태껏 발사했던 우주선 발사대들이 모두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중 아폴로 1호 발사대에 이런 라틴어 문구가 씌어 있다죠. ‘Ad Astra Per Aspera(고난을 넘어 별까지)’. 열 번의 고난과 실패를 딛고 열한 번째 인간은 달을 밟게 됩니다. 지레 겁먹어 포기하지 않고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만 않는다면 별을 딸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굴의 대명사, 처칠의 말로 글을 마쳐야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지쳐가는 국민들에게 한 짧은 연설입니다. 다섯 단어밖에 안 되니 주문처럼 외십시오.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라(Never, never, never give up)!”

이훈범 정치부문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