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파워엘리트 ⑦ 백악관 대변인 내정 깁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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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스타가 됐다.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던 그는 기조연설에서 분열 극복과 단결을 강조한 연설로 대중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당시 연단에 오르기 전 오바마는 33세의 젊은 청년 로버트 깁스(사진)의 넥타이를 맸다. 오바마가 찬 타이가 TV 화면엔 잘 맞지 않을 걸로 생각한 참모 데이비드 액설로드가 깁스에게서 연한 청색 넥타이를 빌린 것이다. 이후 깁스는 액설로드의 추천으로 오바마의 사람이 됐다.

오바마는 22일 깁스를 백악관 대변인으로 내정했다. 그는 오바마 상원의원실 홍보국장에 이어 선거 캠프 대변인으로 일하면서 항상 오바마를 수행했다. 오바마가 상원의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2005년 1월 이후 오바마의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 깁스다.

캠프 대변인실의 린다 더글러스는 “깁스만큼 오바마의 생각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며 “그는 ‘버락 위스퍼러(Barack Whisperer·버락의 영혼과 의사소통하는 사람)’로 통한다”고 말했다.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의 제목 ‘고스트 위스퍼러’를 본떠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선거기간 중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보다 만나기 어렵고, 취재하기 어렵다”는 소리를 기자들로부터 들었다. 기자들과 담소하는 걸 좋아하는 매케인과 오바마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들었지만, 깁스의 책임도 컸다. 그는 오바마를 보호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로 일해 왔다. 그래서 가능한 한 오바마를 기자들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했다.

오바마가 경선을 마무리한 6월 초 그를 전담하는 기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그들은 오바마의 비행기가 워싱턴에서 이륙해 시카고로 향했을 때 오바마도 타고 있는 줄 알았다. 깁스도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두 시간 뒤 비행기가 시카고 공항에 내렸을 때 오바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자들이 얼굴을 붉히며 추궁하자 그때서야 깁스는 “오바마가 워싱턴에서 힐러리를 만나고 있다”고 실토했다. 놀란 기자들은 화풀이할 새도 없이 기사를 송고하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다. 그때의 일을 기자들은 ‘깁스의 기자 납치 사건’이라고 부른다.

깁스는 언론인을 상대할 땐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된다. 기자들에게 쾌활하게 농담을 걸고 함께 스낵을 먹으며 가십거리를 알려주는 친절한 사람이다. 그러나 기사가 맘에 들지 않으면 해당 기자 앞에서 소리치고 조롱하는 걸 서슴지 않는 다혈질이다. 좋아하는 기자에겐 큰 기사거리를 주는 반면 싫어하는 기자에겐 아무 정보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바마와 만나는 것도 방해한다. 그래서 “백악관 대변인 자격이 없다”는 얘기도 일각에선 나온다.

깁스는 앨라배마주 출신으로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자신이 남부 출신이라는 걸 항상 내세울 정도로 긍지가 강하다. 고교 땐 밴드부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고교와 대학 시절엔 축구팀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러면서도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다. 축구는 지금도 좋아하며 중계방송을 보는 걸 즐긴다. 대학생 때 그렌 브라우더 하원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정치의 맛을 봤다.

이후 여러 의원을 보좌하다 2003년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준비하던 존 케리 상원의원 캠프의 대변인을 잠시 맡았다. 변호사인 메리 캐슬린과 결혼했으며, 아들(5)이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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