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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좌담] 위기의 건설업 어떻게 살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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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시공능력평가 순위 41위의 중견회사인 신성건설이 12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 건설업체의 연쇄 부도 우려가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건설사의 침몰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각종 대출로 연결된 금융회사의 동반 부실을 불러 우리 경제에 큰 상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어떤 처방이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 국회·정부·학계·건설업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21일 국회 정무위원장실에서 열린 ‘건설·금융 위기 극복 방안’ 좌담회의 참석자들이 건설업계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전문기자, 김영선 국회 정무위원장,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김경환 서강대 교수. [김형수 기자]


▶김정수=건설업계 상황 얼마나 안 좋나.

▶김흥수 원장=올해 건설업계의 수주는 지난해보다 10% 줄고, 내년에도 -5%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가격은 평균 10%가 하락했다. 우리 연구원이 조사한 지난달 건설업 경기실사지수(BSI)는 2001년 첫 조사 후 가장 낮았다. 체감경기는 훨씬 좋지 않다.

▶이창용 부위원장=건설업계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다만 수주의 40%를 차지하는 상위 10대 건설사는 아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경환 교수=외환위기 직후에도 미분양 아파트가 많았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미분양의 99%가 민간 건설업체의 몫이고, 그중의 절반 이상이 중대형 아파트다. 문제는 이를 소화할 수요 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현 상태에선 어떤 정책을 쓰더라도 미분양을 한꺼번에 해결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김영선 위원장=금융위기에 따른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앞으로 3~5년간 지속되리란 전망이 많다. 그렇게 되면 고용불안, 금융회사의 부실 누적, 서민들의 생활고 가중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들 문제를 같이 해결하겠다는 관점에서 대책이 논의돼야 한다.

▶김정수=건설업의 부실이 금융회사로 옮겨 붙을 가능성을 많이 걱정하는데.

▶이창용=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전 세계가 영향받은 것을 고려하면 우리의 주택담보대출이나 PF대출을 걱정하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의 상황은 다르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각종 대출 규제로 부실화 가능성이 작다. 미분양 등으로 건설회사가 어렵고 건설회사에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이 영향받을 수 있지만 그런 회사는 105개 중 몇 곳에 지나지 않는다. 저축은행 간의 인수합병(M&A) 등에 대한 대비도 하고 있다. 담보대출과 건설회사의 부실이 금융회사의 부실로 번질 것이라는 시각엔 동의하기 어렵다.

▶김경환=지금의 상황이 금융회사에 큰 부담을 지울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위험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지금은 가계가 담보대출을 부담할 능력이 되지만 경기가 나빠져 실업자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건설업체들도 PF대출의 만기 연장이 안 되는 등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건설업계를 위해 더 내놓을 방안도 마땅치 않다. 따라서 정부는 할 수 있는 정책의 한계선을 밝히고, 그 이후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줘야 한다.

▶김정수=더 이상 어려워지기 전에 건설업체의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은데.

▶이창용=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부실이 외부로 드러난 업체는 많지 않다. 따라서 지금은 부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보다는 대주단(채권단) 협약을 통해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해주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정수=대주단 협약과 관련해 잡음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창용=대주단 협약은 채권단이 협의를 통해 채무상환을 연기하는 등의 지원을 하되 정부가 중재자로 나서는 것이다. 좋은 제도인데도 대주단 가입 사실이 알려져 대외 평판이 나빠질 것을 우려한 업체들이 가입을 미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몇 개 업체가 집단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업체들은 대주단에 가입하면 무조건 지원을 보장해 달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아예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대주단 가입도 받지 말되, 가입된 업체는 가급적 회생시키자고 채권단과 협의를 마쳤다.

▶김흥수=처음엔 대주단 가입시한이 있었기 때문에 가입을 고민하는 업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시로 가입할 수 있게 되자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비상시기여서 누군가 총대를 메고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창용=가입시한을 정하면 정부가 시켜 억지로 대주단에 가입한다고 할 수 있고, 그 경우 법적인 문제가 빚어질 수도 있다. 수시 가입할 수 있게 하면 지금은 가입을 신청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어려워지면 신청할 수도 있지 않겠나.

▶김흥수=만약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대 기업은 모두 대주단에 가입하는 구조로 만들어 놓으면 대주단 가입에 따른 평판도 저하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대로 하면 가입한 업체가 오히려 평판도에서 불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창용=100개 회사 다 가입시켜 화끈하게 해보자 생각도 했다. 그러나 중간에 몇 개 기업이 탈락한다 할지라도 100개 기업을 다 살리려면 은행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그 경우 은행의 부실이 커지겠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걸 빌미로 해외 신용평가사들이 한국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낮추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정부가 용기가 없어 강제적으로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반시장적인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김흥수=여러 면에서 금융회사들이 중간에 끼여 어쩔 수 없어 하는 게 보인다. 은행채 매입 등 유동성 지원을 더 강화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창용=유동성을 아무리 많이 늘려도 부도 등 신용위험 때문에 돈이 돌지 않는 게 문제다. 그래서 대주단 협약을 통해 회생에 성공하는 케이스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다.

▶김경환=대주단 운영이 지지부진한 것은 너무 모양새 갖추기에 연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가 위험한지 뻔히 아는데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고 안 하고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빨리 들어오라고 독촉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적으로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서로 가입하려 애쓸 것이다.

▶이창용=자꾸 지연되고 있는 것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조만간 몇 개 회사가 대주단에 가입한다. 또 회생해 가는 모습도 보여줄 것이다. 특히 1차로 대주단에 가입하는 업체에 대해선 신보·기보의 보증 확대, 펀드를 통한 미분양 아파트 매입 등 특혜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김정수=대주단 이외에 다른 대책은 뭐가 있나.

▶김영선=PF를 통해 땅은 샀지만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별도의 기금을 만들어 나중에 되파는 조건으로 건설사나 시공사의 땅을 사들이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 가계가 주택담보대출을 못 갚을 경우에 대비해 이와 관련된 별도의 기금도 필요하다. 두 가지 기금의 마련 방안을 금융위원회에 요구했다.

▶김정수=건설업종을 위해 필요한 정부의 추가 대책을 꼽는다면.

▶김흥수=중견 이상 건설사들에 대주단 협약 등 금융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중소형 건설업체는 지난 정부 때부터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줄어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경기 활성화 측면에서도 SOC 예산을 크게 늘려야 한다.

▶김경환=주택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안정적인 정책환경이 주택시장 안정에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부는 가격이 오르면 규제를 확 늘렸다가, 가격이 떨어지면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규제를 푸는 악습을 되풀이해 왔다. 주택정책은 없고, 주택정치만 있었다는 얘기다. 가격 상승 부담이 없을 때 왜곡된 각종 규제를 정상화해야 한다.

▶김영선=나도 정치인이지만 여야가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종합부동산세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짓이다. 지금은 내수와 수출시장을 연계해 경기를 어떻게 살릴 것이냐에 집중해야 한다. 몇 년간 지속될 경기침체에 대비해 마구잡이로 건설경기를 부양할 것이 아니라 미래 성장동력에 재정을 적극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예컨대 향후 성장동력산업으로 꼽히고 있는 에너지·항공기·로봇 등을 위한 집적단지(클러스트)를 지방에 만들고, 이들 시설을 중심으로 거점도시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정리=김준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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