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악양면에서 ‘배티재’를 넘으면 청암면 경계에 있는 ‘논골 마을’에 이릅니다. 논골은 칠선봉 능선, 해발 600m에 자리한 산중 마을입니다. 산이 높아 하늘은 작으나 땅은 번번해 논밭이 제법 있는 큰 마을입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이 산골엔 어쩐 일이여. 사람이 없으니 사람이 오면 참 반가워.” “언제부터 이곳에 사셨어요?” “오래됐지. 열일곱 살에 시집와 여든세 살, 여적 살았으니.” “어디서 오셨는데요?” “하동 읍내에서. 없이 살다 보니 예까지 왔지, 있이 살면 이 험한 골로 누가 오나.”
“길이 ‘솔’해 이짝 무릎 닿고, 저짝 무릎 닿고 다녔지.” 옆에 계신 할머니가 거드신다. “저 할매는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쇠스랑으로 파는 것 좀 봐. 나는 괭이로 파는데….” 나는 오늘 지난 삶을 땅에 묻고 그 시간을 굳게 믿는 어떤 할매를 만났습니다. 길을 걷는 것은 어떤 만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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