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의 색다른 세상] 명함, 컬러로 바꿔보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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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오리무중이다. 바닥을 쳤다고도 하고, 회복 국면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일반 시민이 시장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는 여전히 썰렁하다. 가계부의 봄은 아직 먼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감성도 메마르고 불안감도 엄습한다. 이런 때일수록 자신에 대한 격려와 잠재력 개발이 더욱 필요한 법이다.

지난 주말 어느 작은 모임에 갔다. 자신의 잠재력과 리더십 개발을 주제로 한 세미나였다. 내용도 새롭고 좋았으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손바닥 절반만한 '컬러'였다. 강의가 끝난 후 애프터 미팅에서 전문강사가 나에게 건넨 명함은 놀랍게도 주황색이었다. 주황색은 옐로와 마찬가지로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고 공감대를 형성, 유쾌함과 즐거움으로 서로 마음을 열게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몇 달 전에 만난 모 일간지 기자의 명함도 본인의 일러스트가 컬러로 프린트돼 있고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인 옐로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주황색 명함과 컬러 일러스트 명함!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이자 자신을 PR하는 명함도 '컬러시대'에 맞게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주황색 명함을 건넨 세미나 강사분과 컬러를 필두로 많은 의견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명함 한 장이 서로 마음을 열어주고 친밀감을 갖게 하며 다양한 화젯거리를 제공,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시간을 인상 깊은 기회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지금도 컬러 명함을 잘 간직하고 있다. 명함의 주인공과 자주 얘기를 나누고 이 불황에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컬러 명함이 가져다준 행운이라고나 할까.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밋밋한 명함에 색깔 있는 실(seal)을 붙이는 것은 어떨까. 이를테면 자신을 나타내는 퍼스널 컬러 실을 디자인해 넣는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뇌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 인상을 각인할 수 있다. "이 실(seal)은 무엇입니까?" "이 색의 의미를 말씀드리자면…"식으로 말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 공감대를 이루는 커뮤니케이션이 첫 만남에서부터 이루어질 것이다. 컬러 명함 한 장이 가뜩이나 불황에 휩싸인 현실에 유쾌하고 즐거운 의사소통의 마당을 만들고 서로 관계를 풀어가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살다 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회사만 생각하면 위에서 쓴물이 올라오는 그런 날 말이다. 불황의 그늘에서 '구조조정' '감원'의 위협 속에 매일 술로 쓰린 속을 달래다 보면 아침이 지겹다. 거울을 보니 폭음과 수면 부족으로 얼굴이 퉁퉁 부었고 커튼을 젖히면 금세 비라도 퍼부을 것 같은 하늘이다. 그래도 결근할 수는 없다.

우선 차가운 물로 세수하고 빨간색이나 오렌지색 수건을 사용해 보자. 밝고 따뜻한 색을 보는 것만으로도 활력을 느낄 수 있다. 옷장을 열어보자. 감성은 자신의 기분과 연계되니까 회색이나 검정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어두운 색을 입으면 기운도 한층 가라앉고 어제의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당연히 옷도 밝고 활력이 넘치는 쪽이 좋다.

사실 옷을 고를 때 빨강이나 오렌지 등 밝고 따뜻한 색에 손이 간다면 그래도 괜찮은 때다. 너무 피곤하고 의욕이 감퇴하여 "빨간색은 아무래도 입기가 버거워"라고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자신의 내면을 치유해야 할 때다. 자신의 상태를 잘 헤아려 치유 색을 입어주자. 예를 들어 매우 피곤한 경우라면 그린계통,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라면 핑크계통이 좋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나 월경주기의 초조함이 원인일 경우에는 보라색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명함 한 장의 컬러와 잘 걸친 옷 한 벌의 컬러가 불황을 이기고 자신을 지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아두자.

이상희 컬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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