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부끄러운 베스트셀러 추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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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다가오는 시대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 사회는 벌써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몇년 전부터 뮤지컬이나 오페라의 입장권이 매진되는 일이생긴 것으로 시작된 문화에 대한 뚜렷한 지향성은 젊은층이 몰리는 영상문화분야의 경우 가위 폭발적이다.각 대학의 영상분야 학과가 인기학과가 된지는 이미 오래다.몇몇 신문사의 올 해 신춘문예 응모자들이 거의 두배나 늘어난 것은 지난 몇년간의 문학위기설을 무색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지향이 급격한 사회변동에 카멜레온처럼 잘 적응해온 나라다운 호들갑으로 여겨질 뿐 문화의 시대를 약속하는것으로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소문이 있는 곳으로 남에게 뒤질세라 뛰어가는 세태는 그 동작이 민첩할수록 예술가 들의 조롱거리가 된다.우리 사회의 가치관은 거의 폭력적으로 일원화하고 있다.서태지나 패닉의 노래에서 야유받는 우리의 교육현실은 키맞추기.줄세우기.선착순으로 요약된다.
개성적 인간이 아니라 획일적 사고의 기계를 양산한 우리 사회는 과도한 베스트셀러 현상에서 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일단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만 하면 독자들이 우르르 몰려든다.거기다문화의 파수꾼인 언론까지 가세하기 때문에 이른바 사재기라는 한국 출판계만의 희귀한 풍토병이 생겼다.자신의 내면을 찾지 않고남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도록 부추기고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 문화적 미래가 있을까.
문화적 천재들은 언제나 남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쪽과는 정반대의 길로 갔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획일화된 사고는 바로 문화의 죽음을 의미한다.괴짜들이 거의 전멸돼버린 우리 사회는 삶의 가치관은 물론 개인들의 취미마저 천편일률이다.
그들은 스스로만 그러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남에게까지 강요한다.자신의 도덕관에 맞지 않는 예술가들을 감옥에 보낸 사람들이바로 몇십년전의 히틀러나 스탈린이었음을 환기시키고 싶다.우리 사회는 지금 문화의 시대를 외치면서도 그런 사고방 식과 많이 닮아 있다.

<도서출판 황금가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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