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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게르만의‘에너지’가 로마 무너뜨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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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게르만계인 스틸리코는 395년부터 408년까지 서로마제국의 총사령관을 지낸 인물이다. 408년 그가 그가 죽은 뒤 서로마제국은 대혼란에 빠져들었고, 476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되면서 최후를 맞는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 문명은 왜 야만에 압도당하였는가
피터 헤더 지음, 이순호 옮김
뿌리와 이파리, 768쪽, 3만4000원

“역사상 최대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인 서로마제국의 이상한 죽음의 원인을 규명”해 보려는 역사학자 페터 헤더의 야심작이다. “로마의 쇠퇴는 터무니없는 거대함이 빚어낸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결과”라는 18세기 계몽사상가 에드워드 기번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그는 로마제국 몰락의 제1 원인을 게르만족의 침입에서 찾고 있다.

그동안 로마 제국 몰락의 원인을 놓고 역사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제시했다. 기번은 “번영의 이면에는 부패 요소가 만연해 있었고, 파괴의 원인은 정복의 크기로 증대되었다. 그러다 세월 혹은 재난에 의해 인위적 토대가 허물어지자 그 비대한 구조물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주저앉은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로마 제국은 내적인 원인으로 무너졌고, 다음 시대의 역사의 주인공인 게르만족의 역할은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4세기에 오면 제국의 내적인 위기(경제적 위기)가 증대되고 이것이 5세기의 서로마 제국 몰락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 내재적 요인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설명이다. 

저자 자신도 1∼3세기까지 게르만족은 작은 부족 단위로 분열돼 이렇다할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로마인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은 적은 동방의 페르시아였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4∼5세기의 로마제국은 경제적으로 호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황도 아니었으며, 특히 기번의 주장 중 하나인 기독교의 국교화가 중앙 정부의 역량을 약화시키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결국 변화의 조짐은 로마 제국 밖에서, 북쪽에서 왔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즉 흑해 북쪽으로 훈족이 이동해 온 것과 그 충격으로 게르만 부족들이 제국 국경을 넘은 것이 결정적인 계기다. 5세기에 와서 그것이 왜 가능해졌을까.

저자는 4∼5세기 로마 변경 주둔군의 전투 능력이 게르만족 병력보다 미약했다고 주장한다. 기동력 있는 야전군은 주로 갈리아, 이탈리아, 서부 일리리쿰 지역에 주둔해 있었다. 반면에 5세기가 되면서 게르만족의 군대는 로마에 맞서 연합하기 시작했고, 수에 있어서도 전투력에 있어서도 로마군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서로마 제국이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게르만 사회가 로마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제국의 힘에 대응하고 나섰기 때문에 몰락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몰락은 끝없는 공격성을 지닌 로마 제국주의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저자가 최근 40여 년간 서로마제국의 몰락과 중세 초 계승 국가들의 창건기에 대한 많은 연구 성과와 자료들에 근거해서 5세기에 야만(게르만족)이 문명(로마제국)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논증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또한 ‘새로운 시대(중세)의 역사의 주인공’인 게르만족에게 새시대 창건의 에너지가 이미 있었음을 인정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기번 외에도 로마제국 몰락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 학자들(하이틀랜트, 프랑크, 로스토프체프, 외르텔, 바크, 프티, 보크 등)이 많고, 그 내용도 다양한 상황에서 ‘역사상 최대의 미스테리’인 거대 역사를 오직 외부적 요인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고 극단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또한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기번 역시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게르만족의 역할─비록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지만─을 강조하고 있고, 결론부에서 “야만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승리가 고대 로마의 파멸과 실질적인 또는 가상적인 관련성이 있다”면서 외부적 요인 또한 함께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게르만족을 여전히 ‘야만족’으로 보고 중세 전반기를 ‘암흑시대’로 보는 부정적인 역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기를 설명했다는 점은 이 책의 진가다.

원제 『The Fall of the Roman Empire: a new history of Roman and the Barbarians』

김덕수<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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