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고흐·마릴린 먼로·마타하리 신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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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신 1,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각 280쪽·268쪽, 각 9800원

 베르베르가 돌아왔다.

배포 큰 작가다. 개미, 나무, 사후 세계 등의 이야기를 그려냈던 그는 결국 신의 세계에 도전했다.

전작 『타나토노트』에서 사후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고, 『천사들의 제국』에선 수호천사로서 세 명의 인간을 인도했던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이번엔 신 후보생으로 뽑힌다. 그는 올림포스 산이 보이는 도시 올림푸스에서 모두 144명(12의 제곱)의 동기들과 신이 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든다. 매 단계마다 한 명씩 탈락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신(神)자’ 마저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게임이다.

전작 『개미』에서 천재 곤충학자 에드몽 웰즈가 의문에 싸인 죽음을 맞이하며 ‘지하실에는 절대 내려가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것처럼 『신』에선 쥘 베른(과학소설가)이 “저 위에 가면 안돼”란 말을 남기고 죽어간다. 신 후보생들에겐 접근이 금지된 올림포스산이다. 물론 미카엘 팽송을 비롯한 몇몇 무리들은 목숨을 걸고 그 금지된 곳을 향한다.

팽송의 동기생은 마릴린 먼로, 마타하리,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생텍쥐베리, 화가 모네와 반 고흐,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물리학자 마리 퀴리, 아나키즘을 창시한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등 인간 세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이들이다. 교수진도 화려하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 지혜의 여신 아테나….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등장신(神)물들은 이 세계에서도 옛날 성질을 버리지 못한다. 식물을 창조하는 과제에서 심미안을 인정받지 못해 꼴찌가 된 반 고흐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제 한쪽 귀를 ‘앙크(신 후보생들의 다용도 도구이자 신분증)’로 쏘아 없애버리는 식이다.

이렇게 장난스러운 베르베르식 패러디와 유머가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넘실댄다. 소설엔 신의 세계도 과학적으로 발전한 모양으로 그려진다. ‘앙크’는 휴대 전화처럼 배터리를 충전한다. 소설에는 한국인이 등장한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은비다. 은비의 할머니는 일제시대 종군 위안부로 동원됐다.

“지금도 할머니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집회를 열어. 하지만 일본인들은 배상을 하기는커녕 자기들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려고 들지 않아.”(2권 357쪽)

한국 독자들이 뿌듯해 할만한 대목이다.

이번에 출간된 두 권은 『신』 3부작 중 1부 ‘우리는 신’에 해당한다. 제 2부 ‘신들의 숨결’과 제 3부 ‘신들의 미스터리’까지 총 네 권이 남았다. 2부는 내년 상반기, 3부는 중·하반기쯤 나올 예정이다. 베르베르가 9년에 걸쳐 집필한 이 작품은 프랑스에선 2004년에 발간됐다. 한국어로 옮기는 데에도 4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꼼꼼히 주석을 달아 신화에 대한 지식이 좀 모자라도 즐길 수 있게 배려한 번역자의 정성을 본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베르베르 팬들이여, 결정의 순간이 왔다. 1부 먼저 읽고 인내할 것인가, 3부까지 기다렸다 한꺼번에 읽어버릴 것인가.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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