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국이 흔들린다-위기감에 주식投賣등 일본팔기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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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리해고와 변형근로시간제는 세계시장에서 기업이 경쟁하기 위한 유력한 무기다.기업조직과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총파업의 진통이 따르더라도 단칼에 잘라버리는 한국이 부럽기까지 하다” 일본신문협회 이와사키 하루미치(岩崎玄道.54)총무부장은 최근 한국의 노동분쟁을 보는 일본 언론의 논조를 이렇게 요약하면서 일본이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제에 발목이 잡혀있는한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일본이 위험하다'는 경고는 민관(民官)을 가리지 않는다.통산성은“앞으로 5년 안에 일본이 산업구조 개혁에 실패하면 1백24만~1백45만명의 실업자가 제조업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과학기술청은 21세기 초엽에는 반도체와 철강 은 한국,전자와 석유화학은 대만,전자제품에서는 중국에 각각 추월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의 공장인 영국을 파멸시켰던.영국병(病)'.그러나 문제를알면서도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일본병'은 더 무거운 중환(重患)이라는게 자가진단이다.
대장성 개혁안을 놓고 막판진통이 거듭되던 지난해 12월20일자민당은 군소정당인 사민당과 신당사키가케쪽에 두개의 봉투를 내밀었다.“하나는 철저한 개혁안이고 또 하나에는 부분개혁안이 담겨있다.선택은 그쪽에서 하라.” 거대여당이 정책결정이라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말로는 개혁을 외치지만 정작 자민당이 개혁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도쿄(東京) 주가는 폭락했다.실망감이 확산되면서 주식.채권.엔화등 일본에 관한 모든 것을 팔 아치우는.일본팔기'라는 투매현상까지 빚어졌다.미 자산운용회사 퍼스트 맨해튼의 데니스 바움은“현재로선 일본의 주식.채권.엔화에 투자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울어가는.일본주식회사'에서 가장 먼저 탈출하기 시작한 것은세계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수출 위주의 제조업.지난해 일본기업의 해외생산비중은 컬러TV 82%,VTR 56%,오디오 86%,CD플레이어는 48%에 달했다.가전제품의 국 내생산은 2조엔을 밑돌아 전성기 대비 40%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떨어졌다.이른바 산업공동화다.
그러나 일본이 안고 있는 더 중요한 문제는 일본식 경영시스템으로 대경쟁시대를 헤쳐나가기에는 힘에 부친다는 점이다.
“한때 자본주의 선진국 인구는 10억명에 불과했다.냉전 붕괴이후 시장경제권은 40억명으로 4배나 팽창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의 히라다 이쿠오(平田育夫) 편집위원은 지난 10년동안 단순한 신(新)시장에 머물렀던 옛 사회주의권에서 저렴한 노동력과 해외자본이 결합되면서 본격적인 대경쟁시대가 도래했다고 지적했다.
경제기획청의 경제백서도.대경쟁시대에 일본이 활력을 되찾기 위한 유일한 처방은 개혁이고,그 기준은 국제경쟁력'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개혁의 도마에는 경쟁력을 상실한 금융.농업.통신등 내수산업과 관료체제가 줄줄이 오르고 있다.
[ 도쿄=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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