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원의 러브 터치] 결혼, 작정하고 사랑하기의 시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제법 오랫동안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거리의 단풍은 붉게 그리고 노랗게 아주 선명하게 타올랐고, 가을을 선연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끝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만 같더니 삭풍이 불고 겨울이 되었다.

혼자 있는 게 쓸쓸한 이 가을, ‘옆구리가 시려 못살겠다’고 호소하는 친구들은 오히려 결혼 20여 년이 돼 가는 멀쩡한(?)아내와 남편들이다.‘혼자 있는 외로움보다 더한 것이 둘이 있으면서도 외로운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언제까지나 뜨겁게 사랑할 줄 알았던 그와의 사랑이 결혼의 연수가 깊어 갈수록 풍요로워지기보다, 점점 헐벗고 삭풍이 부는 스산한 것이 돼 버렸다고 푸념한다.

남편과의 대화가 없어진 지 오래됐다는 한 친구는 ‘마음이 너무 외로워 누군가 내게 따뜻한 말 한마디, 아니 부드러운 눈빛 한 번만 준다면 당장이라도 그를 따라나설 것만 같다’고 한숨짓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사실 결혼은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는 출발선’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뜨겁고 열정적으로-그의 단점마저 황홀한 매력으로 느껴 가면서-빠졌을 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열정’이다.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호르몬의 장난에 따라 사랑의 유효 기간은 6개월에서 18개월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열정의 유효 기간이라는 게 옳다. 열정과 흥미의 호르몬인 도파민의 분비가 계속되면 뇌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것을 안정시키기 위해 엔돌핀과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우리의 열정이 가라앉고 진지하고도 다정한 애착 관계로 들어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애착 관계를 계속 따뜻하고 다정하게 유지하려면 또 자잘한 긴장과 설렘과 끝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잡힌 고기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말처럼 결혼만 하고 나면 그냥 살아도 동화 속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리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결혼 후 두 사람이 한마음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사랑은 ‘작정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화단과 같아서 늘 섬세하게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면 잡초가 우거져 황폐해진다.

그래서 ‘결혼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성숙시켜 주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고, 사랑의 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의지의 결단’이라고까지 말한다.

나를 잘 돌봐서 상대에게 신선한 모습, 늘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몸과 마음의 대화를 열정적으로 하는 것, 상대에게 시간을 내는 것,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것, 그리고 상대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주고, 격려하며 확실한 그의 편이 되어 주는 것, 그가 언제든 돌아올 편안한 마음자리가 되어 주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작정하고 사랑하기’이다.

성교육상담전문가, 대한성학회 사무총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