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태권도 센터와 태권도학과 설립 준비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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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잠자고 있던 마음속의 열정을 일깨워줬다.” 두바이 인근의 또 다른 UAE 토후국 샤자(Sharjah)의 부동산사업가인 술탄 빈하다 알수와이디는 박형문 사범을 처음 만난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는 1980년대 고교 시절 태권도를 처음 접한 뒤 엄격한 예의범절과 정신수양을 강조하는 태권도의 정신에 매료됐다.

박형문 UAE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 #토후국 샤자 왕가의 정신적 스승… 한국 태권도 후배들에게도 도움 줄 터

그러다가 몇 년 전 한국 국가대표팀이 UAE를 방문했을 때 박형문 사범을 처음 만나면서 태권도와 재회했다. “박 사범과 수련하면서 몸과 정신의 조화를 배웠다. 우리 사이에는 평생을 함께할 신뢰와 우정이 있다.” 구릿빛 피부의 박형문 사범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훌륭한 선생이라고 거들자 술탄은 “선생(teacher)이 아니라 인생의 스승(master)”이라고 바로잡았다.

“태권도는 단순한 격투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태권도를 통해 사업상 어려운 미팅을 앞두고 있을 때 긴장을 풀고 감정을 조절한다. 에너지가 생기고 집중력도 좋아졌다.” 술탄의 사무실 한가운데에는 태권도 2단 단증을 수여 받는 자신과 박형문 사범의 사진이 커다란 액자에 걸려 있다.

술탄과의 인연은 박형문 사범의 인생도 바꾸었다. 술탄의 소개로 샤자 왕실의 유력인사인 셰이크 살렘을 만났기 때문이다. 셰이크 살렘은 샤자의 수입자동차를 총판하는 알바타 그룹의 총수이자 샤자 현직 총리의 형이다. 당시 박 사범은 UAE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었다.
태권도 매력에 푹 빠진 셰이크 살렘은 그를 자기 가문의 사범으로 정식 초청했다.

왕실 가문과 사제 관계를 맺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매우 드문 기회다. 현재 박 사범은 UAE 대표팀 감독직을 유지하면서 셰이크 살렘의 태권도 수련과 수행 경호를 맡고 있다. 또 셰이크 살렘의 조카인 샤자 총리의 세 아들에게도 태권도를 가르친다(샤자 왕실은 그에게 집과 차량, 억대 연봉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일면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지만 양쪽의 관계는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한다. “왕족으로서 고개를 굽힐 일이 없는 셰이크 살렘이 나에게만은 ‘Sir’를 꼬박꼬박 붙인다. 태권도 수련 시간은 빈틈없이 지키고 허락 없인 먼저 말을 꺼내는 법도 없다”고 박 사범은 말했다. 그 또한 셰이크 살렘의 배려와 소탈함에 반해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게 됐다.

“한국에서 작은 태권도 티셔츠라도 사다 주면 다음 수업에 꼭 입고 나타나고, 명절에는 뜨겁게 데운 전통음식을 직접 가져다주는 모습에서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셰이크 살렘과 술탄은 매일 오후 두 시간씩 박 사범의 프로그램에 따라 태권도를 익힌다. 셰이크 살렘이 처음 태권도를 시작했을 때에는 복부 비만에 당뇨, 고혈압 증세까지 있었지만 1년여가 지난 요즘은 배도 홀쭉해지고 체력과 유연성에서도 뚜렷한 진전이 이뤄졌다.

“셰이크 살렘의 부인이 ‘박 사범 덕분에 남편 건강이 너무 좋아져 둘째 부인을 들일까 걱정이다’고 농담을 했을 정도”라고 박 사범이 말했다. 조만간 한국 국기원을 함께 방문해 1단 심사를 받을 계획이다. 저녁이 되면 박 사범은 UAE 국가대표팀 훈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범님!” 박 사범을 본 선수들이 정중하게 경례했다.

국가대표팀 선수는 모두 30여 명인데 보통 정규 직업이 따로 있고 UAE 전역에 흩어져 산다. 따라서 주로 퇴근 후에 모여 야간 훈련을 한다. “하루 종일 일한 뒤에 장시간 운전하고 달려와 녹초가 되도록 훈련을 한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늘 불안하다”고 박 사범은 말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태권도는 그만큼 중요한 의미로 통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 수 개월 이상 머무르며 한국어와 문화를 배웠다. 그들에게 한국은 태권도의 고향이란 이유만으로 동경의 대상이다. “태권도는 나의 인생”이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면서 박 사범은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자 왕실과 국가대표팀에서 박 사범이 쌓은 우정은 앞으로 그가 펼칠 사업의 든든한 힘이 될 듯하다.

현재 UAE의 태권도 인구는 대략 2000명이다. “예전보다 많이 늘긴 했지만 가라테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박 사범은 샤자에서 전략적으로 조성하는 대학단지인 유니버시티 시티에 태권도학과를 개설하고 대형 태권도센터를 세우는 게 꿈이다. 이미 ‘Park’s Club’이라는 이름도 지어놓고 도복과 홍보용 스티커도 만들어 뒀다.

“중동에 오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많지만 살인적인 임대료와 물가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태권도학과나 큰 도장을 만들어 놓으면 한국 후배들이 진출할 길이 조금이나마 넓어지지 않을까?” 박형문 사범의 ‘두바이 드림’은 이제 시작이다.

뉴스위크 854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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