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리포트] 구호만 요란한 불법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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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불경기로 장사가 안된다고 야단인데도 정부는 부동산 투기 때문에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한때 투기라도 일어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났으면 좋겠다며 각종 규제를 푸는데 앞장섰던 건설교통부 고위 공무원인 C씨는 이제 투기를 잡느라 정신이 없다.

건교부는 신행정수도 후보지 선정을 앞두고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부동산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 구역으로 묶여 있는 수도권과 충청권의 거래실태를 면밀히 조사해 허가목적을 위반한 경우 강력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한다. 거래시점을 언제부터 잡을 것인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해야 할 것을 놓고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건교부는 매년 한번씩 허가를 받은 토지에 대해 이용실태를 철저히 조사해 투기 수요가 발붙일 수 없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허가구역에서는 실수요자가 아닌 경우 토지거래허가가 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건교부의 방침이다. 말만 들으면 이제 땅 투기는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규정이 없어 투기자를 색출하지 못했던가. 단속을 한다 해도 위장전입.명의신탁 등을 통한 땅거래는 확실하게 가려내지 못했다. 게다가 실제 단속기관은 일선 지방자치단체여서 중앙정부의 의지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건교부야 철저히 규명해 불법거래를 잡아내고 싶겠지만 지자체들이 잘 움직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자체 입장에서야 거래가 많을수록 세금 수익이 커지는데 굳이 욕먹어가며 강력하게 단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여기다가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와 공무원들이 지연.학연.혈연 등으로 얽혀 있는데다 인력의 여건상 강력한 단속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투기를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건교부의 얘기를 곧이 곧대로 듣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동안 수없는 투기단속 관련 제도를 만들었지만 투기행위는 더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현실을 무시한 채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함에 따라 정책을 가볍게 여기는 불신 풍조만 낳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일은 비단 토지 시장뿐만이 아니다. 주거용 오피스텔도 원래 규정에는 아파트처럼 꾸밀 수 없게 돼 있다. 분양 과정에서는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준공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큰 소리쳤지만 얼마 안가 흐지부지되고 마는 게 우리 행정의 실태다. 모든 것을 허용하든지 아니면 철저한 관리를 통해 위법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든지 뭔가 확실하게 해야 부동산 시장도 투명해질 것이 아닌가.

정부의 행정수도 후보지 등에 대한 땅투기 근절책이 새로운 시대의 모범적인 케이스가 되길 기대한다.

최영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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