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燃하는東歐민주화>上.공산체제 붕괴 8년 시위로 얼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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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동유럽이 민주화를 놓고 또다시 끓고 있다.
이번 시위는 지난 89년 민주개혁을 요구하며 동유럽의 연쇄시위를 몰고왔던 체코.헝가리.폴란드에서가 아니라 가장 경직되고 폐쇄적이라는 동유럽의 동쪽국가들이 대상이라는게 다르다.
그만큼 동유럽의 서쪽국가들(체코.헝가리등)에 비해 시장경제 실험도,체제민주화 실험도 늦은 이들 국가에서 뒤늦게 일어난 이번 시위사태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더큰 것이다.
세르비아의 반정부시위가 이미 55일째를 기록했는가 하면 이웃불가리아의 반정부시위는 불과 일주일도 안돼 의사당이 불에 타는등 과격양상을 띠고 있다.
동유럽의 공산체제 붕괴 8년째 계속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시위사태는 민주개혁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멀고 지난한 과제인지 잘보여주고 있다.
공산체제 붕괴 이래 곧바로 옛 유고 내전을 시작했던 세르비아는 그동안 개혁의 진통을 맛볼 여유가 없었다.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와 직접적인 전쟁을 치렀으며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를 지원한 대가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까지 당했다.국제적으로도 밀로셰비치는 전쟁을 지휘하면서 확고한 기반을 다져나가 옛 유고의 평화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로 부각 됐다.
그러나 영원히 흔들릴 것같지 않던 밀로셰비치의 권력도 이제 아슬아슬한 벼랑에 놓여있다.전쟁통에 가려져있던 민주개혁 요구가본격적으로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위의 직접적 원인은 야당이 승리한 지방선거를 무효화한것이었다.그러나 학생과 야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공산독재체제를답습한 비민주적 통치관행의 종식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자유를 비롯한 광범위한 민주화개혁의 성격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불가리아에서는 이에 비해 부정선거나 민주적 제도가 문제되지는않고 있다.94년 치러진 총선거는 공정하고 민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개혁의 부진과 절대빈곤은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지난주말 있었던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과 방화는.더이상잃을 것이 없다'는 극단적 위기감에서 출발하고 있다.
집권 사회당(옛 공산당)은 경제개혁에 실패,불가리아를 동유럽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시켰다.
은행의 연쇄 도산으로 불가리아 화폐 레프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인플레율도 지난해 3백%나 됐다.
국영기업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사유화도 부진하다.유권자들은 지난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이미 공산당 후신인사회당에 대한 심판을 내렸다.
민주세력동맹의 페타르 스토야노프는 오는 22일 실권 없는 새대통령에 취임한다.사회당의 얀 비데노프는 총리와 사회당 당수직을 물러났다.국민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조기총선을 통해 정권교체를 바라고 있다.
물론 민주화.시장경제 실험이 정권이 바뀐다 해서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그것이 동유럽의 후진국 불가리아와 세르비아가 함께 안고 있는 진정한 숙제인 것이다.
[베를린=한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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