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누가 죄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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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 새해는 입시(入試)로 시작됐다.연휴에 잡힌 입시날짜를 탓할 힘이 없는 입시생들은 별 수 없이 귀성.관광객 틈에 섞였다. 입시가 끝났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폭설 속에 백화점 할인판매가 시작됐다.유명백화점이 한꺼번에 벌이는 할인판매 기회를 놓칠세라 주부들은“교통체증을 유발한다”는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렸다.우리나라에선 찬거리도 백화점내 슈퍼마켓에서 사야 알뜰주부다.좋은 물건을 값 싸게 사은품까지 주며 외상으로도 팔고,주차료까지 대신 내주기 때문이다.낮에는 교통때문에 엄두를 못내는할인점에는 한밤중에라도 가야 가계에 보탬이 된다.주말.한밤중 백화점 주변 도로는 이래서.어쩔 수 없이'혼잡해진다.
누구의 죄(罪)인가.당국은 당사자인 시민을 지목한다.때문에 시는 혼잡통행료를,재정경제원은 휘발유세를,그리고 구청.경찰은 경쟁하듯.딱지'를 뗀다..경유가 너무 싸서'서울 공기가 오염되는 줄 모르는지 승용차 5부제만 들먹인다.저녁 퇴 근길 두시간을 승용차 안에서 보내며“억울하다”는 시민 불평에 당국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대중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타는 시민들은“남산터널이 빈 택시.빈 화물차로 차는 것을 보며 시(市)가 해도 너무 한다”고 불 만이다.
이럴때 뜻밖에 한 판사가.진짜 죄인'을 찾아 냈다.교통체증.
불법주차를 한 당사자인 시민이 아닌 일산 신도시의 한 할인점을비정상적으로 많은 교통량을 유발해 주변을 혼란케 한 .원인제공자'로 보고 진짜 죄인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 동안 게으르기만 했던 당국.교통전문가들은 충격을 받을만 하다.시민들도 여기저기서 재판을 통해 교통체증을 뚫겠다고 나서고 있다.때 아닌.숨은 죄인 찾기'게임이 벌어진 셈이다.
어떻게 하면 죄인을 더 많이 잡을 수 있을까.입시날짜를 새해연휴에 잡은 사람,승용차 통행을 부채질하는 백화점,복잡한 시내에 수천명을 몰리게 하는 예식장,지하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세미나.전시회를 여는 사람,임원에게 고급차.기름값. 혼잡통행료를제공하는 기업등 죄인은 지천이다.
그러나 시민이 재판을 통해 벌이는.죄인찾기'로는 한계가 있다.어차피 당국.전문가가 나서서 죄를 명확히 묻는 방안을 제도로만드는게 긴요하다.“수요관리를 한다”며 죄없는 시민을 괴롭히는정책만 양산(量産)하기보다 진짜 죄인을 찾아 물고 늘어지는 새로운 교통관리기법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조용하기만 한 당국.전문가들도 시민과 함께 나서야 할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음성직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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