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대사관 꾸준한 노력으로 한국 새롭게 알게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프랑스 교과서를 만드는 한 출판사에서 역사 교과서를 훑어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유럽·일본과 기타 아시아는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한국을 찾는 기자의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교과서 편집장은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를 보여줬다. 두 페이지에 설명은 거의 없이 사진만 두 장 크게 실려 있었다. 서울 명동 일대와 현대조선소를 찍어놓은 것이었다. 그나마 1980년대 모습이었다.

며칠 뒤 프랑스 북부 루앙시에서 200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명문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학생들이 한국을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어봤다. 그는 미안한 얼굴로 "아직 대부분 학생은 한국하면 대형 마스게임이나 김정일 수령 동지 찾는 북한의 모습을 떠올린다"고 답했다.

답답하고 또 서운했지만 그들의 잘못은 분명 아니다. 제대로 알리지 못한 우리 탓일 뿐이다. 이런 대답을 듣기는 프랑스에서만이 아니다. 유럽 각국을 다니다보면 한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종종 놀란다. 그들 앞에서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3위라든가 최고의 IT 강국이라고 강변해봤자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 만난 교육계 인사들로부터 들은 얘기다. "일본의 경우 50여년전부터 유럽 각국 교과서 제작자와 교육부 관계자, 교사들을 일본으로 초청해 구경시켜 주고 꾸준히 일본 관련 자료를 줬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교과서를 만들고 학생들 가르치는 사람을 '친일파'로 만드는데 앞장서왔다는 얘기다. 한 번 '일본 물'이 든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좀 더 상세하고 호의적으로 기술하게 되고 또 좀 더 열정적으로 가르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도 많이 늦었지만 이번에 프랑스 중학생 80만명이 보는 역사 교과서의 다케시마 표기를 독도로 고친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진전이다. 단어 하나 바꾼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 교육부와 주 프랑스 한국 대사관측이 1년 넘도록 관계자들을 접촉하면서 공들인 결과다. 출판사 관계자들 "대사관측의 줄기찬 노력으로 비단 독도문제 뿐 아니라 한국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고도 했다.

프랑스 고등학교 정규 수업에 처음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 강의를 개설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이라는 나라도 제대로 모르는 나라의 고등학교 정규 수업에 '한국'을 집어넣은 것은 쉽지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문화에 관한한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프랑스여서 더욱 그렇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정부가 세계 속 '친한파' 심기에 좀 더 힘을 기울였으면 한다. 단 번에 이뤄지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이는 일이 바로 국가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