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家閥>7.둥젠화家-해운王서 政界로 항로 수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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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비즈니스의 바다(商海)에서 정치의 바다(政海)로 항로수정'. 홍콩언론들은 지난해 12월 반환이후의 홍콩을 이끌 초대 행정장관에 선출된 선박왕 둥젠화(董建華)의 변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부자 2대에 걸쳐 오대양(五大洋)을 누비면서 세계적인 해운재벌로 성공한 董의 정치적인.거듭나기'를 이른 말이다.
董은 다른 아시아 가벌들과는 조금 다르다.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파키스탄의 부토등이 모두 정치판에서일어선 가벌인데 비해 董은 사업상의 성공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홍콩 초대 행정장관에 선출됨으로써 부(富)와 권 력을 함께 쥐게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성공배경에는 부친 둥하오윈(董浩雲)이 자리잡고 있다.
상하이(上海)의 군소해운업자에서 출발해 30년대 중국의 해운왕으로 올라선 둥하오윈은 화려한 상재(商才)와 근면성,그리고 민족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전성기였던 60~70년대에는 세계적인 호화여객선 10여척과 컨테이너선 30여척등 모두 80여척의 선단을 거느려 세계적인 선박왕 오나시스를 앞서기도 했다.
10대에 벌써 해운업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시작한 것은 2차대전 종료후 맥아더사령부와의 담판을 통해 일본의 야전용 선박 10만을 인수하면서부터다.
그는 이들 선박을 이용해 당시 중국 최대의 공업도시 상하이에에너지를 공급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또 세계 최초로 석유와 광석 수송선을 건조했고 지난 70년엔 호화여객선.퀸 엘리자베스'호를 사들여 해상대학으로 개조해 화제를 뿌렸다.
올 7월부터 홍콩을 이끌어가게 될 둥젠화는 그의 2남3녀중 장남이다.
둥젠화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민족주의적 색채가 매우 강하다.
장남인 그는 모두 영국의 귀족학교에서 수학한 다른 형제들과 달리 부친의 뜻에 따라 중국인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베이징(北京)어와 광둥(廣東)어.상하이어,그리고 영어에모두 능통하고 계산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뛰어난 속셈능력을 지녔다.또 중국 고전,특히.손자병법(孫子兵法)'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董은 부친과 마찬가지로 일벌레로도 유명하다.매일 오전7시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한다.
그는 80년대 불어닥친 불황위기에서 중국측의 후원을 끌어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동방해외(東方海外)'를 기적적으로 회생시키면서 재능을 크게 인정받았다.
그의 동생 젠청(建成) 또한 부친이 물려준.금산윤선(金山輪船)'을 독자적으로 경영하면서 우리의 상공회의소격인 홍콩총상회(香港總商會)의 중국사무위원회 주석직을 맡아 눈부신 활약을하고 있다. 여동생 젠핑(建平)은 서양화를 취급하는.예창(藝倡)화랑'의 경영주로 홍콩 예술계에서 지명도가 오빠인 둥젠화를 능가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둥젠화의 부인 자오훙핑(趙洪빙)은 동방해외의 경영에 관여하면서 때론 남편의 사무를 대신하고 있다.
둥젠화는 2남1녀를 두고 있다.장남 리쥔(立均)이 항공화물및컨테이너 업무를,장녀 리쥔(立筠)은 투자부문을 각각 맡아 부친의 회사경영에 참여하고 있으며,막내 리신(立新)은 작은아버지 회사인 금산윤선에서 일하는등 세자녀가 모두 해운 가벌의 맥을 잇고 있다.
리신은 지난 94년 홍콩거주 한국교민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둥젠화가 초대 행정장관에 오를 정도로 베이징 권력층과의 교분이 두터운 반면 동생 젠청은 대만의 고위층과 사돈을 맺어 집안전체로는 중국본토와 대만 양쪽에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董은 이밖에도 홍콩 정.재계는 물론 영국과 미국에도 상당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어 초대 행정장관 피선과 함께 대내외적으로 13억 중국인 사회의 새로운 실력자로 떠올랐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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