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마다 정책 바뀌고 … 대출 힘들고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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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월요일 아침, 박희태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서울 구로동에 모였다. 중소기업이 모여 있는 구로디지털단지 내 한국산업단지공단. 한나라당은 경제난 속에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당이 마련한 지원 대책을 설명하겠다며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여의도 당사가 아닌 민생 현장에서 회의를 연 건 18대 국회 들어 처음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맞닥뜨린 민심은 지도부를 당혹하게 했다. 회의에 참석한 11개 중소기업 대표들은 하나같이 어려움을 토로하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정갑윤 의원, 정몽준 최고위원(왼쪽부터)이 17일 오전 서울 구로동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자리는 현장에서 직접 산업계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안성식 기자]


심종헌 유넷시스템 대표는 “대통령도 (은행 대출이) 잘 안 된다고 말씀하시던데 제가 말한다고 해결책이 나올까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심 대표는 “저와 중요한 업무를 하는 분들이 제가 한두 달 후에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할 정도”라고 사정을 설명했다. 정성호 오닉스시스템 대표도 “정권마다 정책이 바뀐다”며 “정부 지원을 한 번 받으려면 ‘작년에 지원받아서 올해는 안 된다’ ‘시장성이 없다’ ‘보고서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중소기업 사장들의 호소가 이어지자 박 대표는 “중소기업은 애초부터 어려운데 최근 금융위기 때문에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걸 짐작한다”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의 어려움을 제가 피부로 한 번 더 느꼈다”며 “동주상구(同舟相救·같은 배를 탄 사람끼리 서로 돕는다는 뜻)의 정신으로 어려운 국난을 헤쳐 나가자”고 당부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보증기관에서 한시적으로라도 중소기업 대출을 100% 보증해줘서 은행이 쉽게 대출해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 측 대표로 참석한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런 사태를 맞은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원 대책을 설명하면서 “노력하겠다”는 말을 일곱 차례나 되풀이했다.

회의가 끝난 후 지도부들은 일일이 기업 대표들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네며 “열심히 하겠다” “언제든 의견을 보내주면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당 지도부는 이어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제일메디컬 코퍼레이션을 방문한 뒤 공단 내 구내식당에서 근로자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이른 아침 구로디지털단지역 3번 출구에 모인 지도부는 출근 길 시민들과의 만남도 시도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악수를 청하는 이도, 인사를 받아주는 이도 없었다. 한 시민은 “사람 다니는 길에서 뭐 하는 거냐”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인파에 밀리던 정몽준 최고위원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역에서 출구로 나오는 육교가 위험하다. 빨리 확장해야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송광호·공성진·박순자·박재순 최고위원, 홍 원내대표, 임태희 정책위의장, 안경률 사무총장 등 지도부 대부분이 참가했다. 

선승혜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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