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개성공단, 기싸움 대상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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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임 특사는 “개성공단을 위해서도 경의선 연결 철도와 도로 공사를 조속히 추진해야 하니 내일부터라도 공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인민무력부장에게 빨리 진척시키도록 전달하라”고 배석했던 이명수 작전국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개성공단이 이 같은 김 위원장의 관심과 승인하에 조성이 가능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00년 8월 북한과 현대아산이 개성공단 조성에 합의한 이후 이곳은 남북협력의 상징이자 공동번영의 터전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개성공단은 일대 위기에 봉착했다. 남측 민간단체에 의한 김 위원장 비난 전단 살포 등을 문제삼은 북한 당국이 폐쇄를 겨냥해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군부 인사들이 남측 기업인에게 “이제는 남쪽에 가서 사업을 하라”고 위협했다.

그러자 정부는 이전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여주고는 있다. 공단 내 탁아소 및 소각장 설치 착수 등 개성공단 활성화 방안을 밝혔다. 서해지구 군 통신망 정상화를 위한 자재 제공 의사도 북측에 전달했다.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해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중 지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이 정도의 ‘성의’에 만족하고 폐쇄위협을 거둘지는 의심스러운 국면이다. 북한의 핵실험 등 악재를 이겨내고 가동되어 온 개성공단의 운명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계제로에 빠진 것이다.

폐쇄가 단행된다면 그것은 공단사업자의 실패나 북한 근로자들의 실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남북 당국 모두에게 심각한 수준의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우선 북한의 경제회복은 결정적으로 물 건너갈 것이 틀림없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를 얻어내려고 그렇게 애를 쓴 이유 중 하나는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외자유치다.

이를 통해 신의주·남포 등에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도해야 경제회복의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적인 이유로 멀쩡하게 돌아가는 기업에 치명타를 가하는 정권에 투자할 기업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북한은 명심해야 한다. 핵실험까지 해가며 20여 년 만에 간신히 얻은 성과를 무산시킬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한국정부가 받을 타격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해당 기업의 피해는 물론이고 긴장고조로 인한 ‘코리아 리스크’의 확충도 상당한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이다. 신중하고 면밀한 대처가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북한 근로자 기숙사 건설 합의 이행과 통신 자재 제공을 차일피일 미루는 등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온 것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물론 남북관계 기조의 재정립 차원에서 이전 정부와 다른 노선을 택할 수는 있다. 대화를 위한 대화의 지양이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별개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이 바로 이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인 ‘상생·공영’을 추진할 수 있는 터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총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고 있는 화해협력의 시범사업이 벌어지는 곳이다. 고촉통(吳作棟) 전 싱가포르 총리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 만큼의 평가를 얻을 정도로 소중히 키워온 남북 번영의 상징탑이 남북 지도자의 ‘기싸움’으로 무너진다면 민족적 수치다. 남북 모두 개성공단을 처음 만들 때의 협력과 호양(互讓)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남북 모두 윈윈할 수 있다.

안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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