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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홍구 칼럼

오바마와 자기 쇄신의 경쟁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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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바마 스스로 당선 연설에서 밝혔듯이 미국의 자기 쇄신 성공 여부는 그의 임기가 지나서야 알 수 있겠지만 이번 선거 결과만 갖고도 일단 미국은 쇄신과 개혁의 역사적 기회를 포착하게 되었다. 이미 국제정치의 세력판도는 다극화(多極化)시대로 진입했으며 그동안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을 뒷받침해 온 경제적 우위도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크게 흔들림으로써 오직 과감한 쇄신과 개혁만이 미국의 위신과 위치를 지켜갈 수 있는 지름길임이 확실하게 되었다. 특히 당면한 미국의 위기는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이미 경제·사회·기술·문화 등 모든 면에서 급격한 세계화에 휩쓸리고 있는 모든 국가가 각기 경험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전환기의 시련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의 세계는 자기 쇄신 능력의 경쟁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쇄신의 능력과 결단이 있으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시점에 오바마를 선택한 미국은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오바마 당선자는 과거 어느 때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미국의 새로운 위상과 활력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는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지닌 분열과 갈등이란 약점을 오히려 다양성이 내포된 창의력과 사회적 동력이란 강점으로 전환시키는 대실험을 과감히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종차별의 대표국으로 낙인찍혔던 미국이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모두에게 자성의 기회를 갖게 하는 도덕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는 곧 미국의 국제적 이미지의 상승과 미국 국민의 조국에 대한 자존심의 고조로 이어질 수 있다.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갖는 다양성을 융합한 애국심은 무서운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둘째로 언제부터인가 공허한 슬로건으로 들리기 시작한 자유·평등·인권·복지와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오바마의 등장과 함께 살아 숨쉬는 정책목표로서 다시 힘을 얻을 가능성이 커졌다. 냉철한 현실판단에 입각한 실용주의가 꿈과 이상으로 포장될 때 국가는 고도의 발전동력을 얻게 된다. 따라서 유토피아와 현실을 접목하는 정치실험에 도전한 오바마 시대의 미국과 우리가 각별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두 나라가 함께 추구하려는 공동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새롭게 정리하는 작업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무작정 오바마 정부의 인맥을 찾으려는 원시적 접근방법보다는 실용과 이념이란 두 날개로 함께 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바마의 등장은 미·북 관계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고, 이는 우리가 지금껏 쌓아온 남북관계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주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우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대북정책 추진의 기술적 혹은 방법론적 측면을 강조하기에 앞서 오바마의 당선이 시사하는 역사적 필연성에 주목할 때 오히려 상황의 반전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도 이번 기회를 통해 자기 쇄신의 능력을 보일 수 있다면 미·북 관계는 개선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바로 한국의 통일정책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역사에는 예외가 없다. 남이나 북이나 자기 쇄신의 능력을 상실하는 체제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촉진하는 새로운 계기로 오바마의 당선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