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 전환 ⑤ 송재성 성호그룹 회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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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24면

송재성 성호그룹 회장

“나는 나쁜 놈이다!”

대접 받던 상전의식 고치려 “난 나쁜 놈” 주문처럼 외워

1977년 서울 우이동에서 도봉산으로 오르는 등산길. 터벅터벅 산길을 가던 40대 후반의 남자가 갑자기 허공을 향해 외친 일성이다. 평일이어서 주변에 등산객이 많지는 않았다. 설령 누가 듣더라도 상관없었다. 자기 자신을 향한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송재성(76) 성호그룹 회장은 공무원에서 사업가로 변신하면서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였다. 그는 54년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받은 뒤 지도교수 추천으로 내무부(행정안전부의 전신) 항만과의 토목직 촉탁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77년 인천항 건설사무소장(서기관)을 끝으로 23년간 공직에 몸담았다. 약사였던 아내는 안정된 직장을 떠나려는 남편을 잡지 않았다. 외려 ‘맘껏 해 보라’며 든든한 응원군이 돼 줬다. 송 회장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두세 달 산을 오르내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음을 다스리고 변화시키려면 그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였다. 산행은 언제나 대접받는 ‘갑’의 위치에 안주하던 자신과의 결별이었다. 철저하게 ‘을’의 자세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 업자에게 큰소리치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나쁜 놈’이라고 주문(呪文)처럼 외쳤다.

3년 내 빚 없는 회사 만들 것
공무원 관두고 ‘내 사업’을 한번 해 보고 싶었다. 건설업을 하려 했지만 당시 47세였던 그에겐 돈도, 면허도 없었다. 고민 끝에 대학 선배가 하는 건설회사의 부사장으로 들어갔다. 말이 부사장이지, 사실상 하도급 건설사를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공사를 따내면 일정 비율을 회사에 떼주고 나머지로 공사비를 충당하는 구조였다. 공사비를 아껴야 마진도 생겼다. 지방 현장소장까지 마다하지 않고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남들이 쓸 때 같이 쓰고, 남들이 잘 때 같이 자고, 남들이 놀 때 같이 놀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악착같이 3년간 모은 돈으로 81년 중소 건설회사를 사들여 성호종합건설이란 간판을 내걸 수 있었다. 송 회장은 “20여 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상전의식’을 고치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그냥 잘해서도 안 되고 남들을 감동시켜야 하는 치열한 사업 일선에서 정말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회상했다.

성호그룹은 97년 외환위기 직후 사세 확장에 나섰다. 습식 내화 피복재 생산업체인 성현케미칼, 하수관 파이프 제조업체인 성호철관 등 기술력을 갖춘 회사를 건실하게 키웠다. 특히 법원 경매에 나온 상업용 부동산을 헐값에 사들여 재미를 봤다. 이를테면 계열사 여삼이 관리하는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의 여삼빌딩은 외환위기 때 서울중앙지법에서 250억원에 낙찰받았는데, 지금 평가액은 낙찰가의 서너 배를 웃돈다. 이 건물을 비롯해 청담동 GE타워, 서초동 대원빌딩, 논현동 성현빌딩 등 강남 노른자 상권의 빌딩을 4개 소유하고 있다. 송 회장의 부동산 투자 원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절대로 땅 장사는 안 한다. 현금 흐름이 좋은 상업용 빌딩만 골랐다.”

지난해 강남 4개 빌딩에서 얻은 임대료 수입만 114억원에 달한다. 2006년 무명의 중견기업이던 성호그룹이 대형 시스템통합(SI) 업체인 현대정보기술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현금 동원력 덕분이다. 당시 언론은 이 인수합병(M&A)을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표현했다.

성호그룹에 인수된 뒤 현대정보기술은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매출은 2530억원으로 전년보다 549억원 줄었지만 손익에선 48억원의 순익을 냈다.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과로 이야기하라” “기업의 존재 이유는 흑자를 내는 것이다” “적자기업은 ‘이완용’, 흑자기업은 ‘안중근’이다” 등과 같은 송 회장 특유의 경영철학도 흑자 전환에 한몫했다. 그는 요즘도 매주 토요일 현대정보기술을 방문해 주요 경영지표를 챙긴다. 올해는 전반적 경기침체 탓에 경영 여건이 썩 좋지 않다고 한다. 올 상반기 다시 소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는 “매출은 전년보다 줄어들지 모르지만 흑자는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송 회장은 전문경영인인 현대정보기술 이영희 대표에 대해 “정보기술(IT) 업계에서 가장 유능한 경영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대정보기술 인수 이후 송 회장은 한때 금융회사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숙고 끝에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결론을 냈다.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3년 안에 빚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재무구조를 만들 겁니다.”

세숫물 재활용하는 짠돌이
송 회장은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지난해 모교인 한양대 서울 캠퍼스에 토목관을 건립한 것을 꼽았다. 지하 2층, 지상 7층에 연면적 7288㎡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그의 이름을 따 ‘재성토목관’으로 명명됐다. 그가 2003년 기부한 55억원의 발전기금이 건물을 짓는 데 큰 힘이 됐다. 멀티미디어실·사이버강의실·컴퓨터실 등 최첨단 시설과 함께 각종 실험실과 교수연구실·세미나실·도서실 등을 갖췄다. 송 회장은 한국전쟁이 나던 50년 대학에 입학했다. 송 회장의 기억에 남아 있는 캠퍼스는 피란지인 부산 송도 산자락의 천막교사가 거의 전부다. 천막교사에서 대학 생활을 보낸 그가 최첨단 건물을 모교에 희사한 이유는 뭘까. 그는 “공직과 사업에 뛰어들며 힘든 순간을 겪을 때마다 부산의 천막교사를 떠올리며 새로운 다짐을 마음에 새겼다”며 “미래를 위한 인재 육성이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성장 전략이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이 대학에 기부되고 투자돼야 한다”고 했다.

후학을 위해 큰돈을 쾌척했지만 그는 검약한 생활을 이어간다. 서울 도곡동 아파트에 살지만 그의 집 욕실 안에는 고급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게 플라스틱 통이 하나 있다. 손·얼굴을 씻은 물을 변기용으로 재활용하기 위해서다. 거실과 연결된 부엌에서 식사할 때는 반드시 거실 불을 끈다. 사람이 없는 곳에 불을 켜놔 전기를 낭비하는 법이 없다. 성현빌딩에 있는 회장 사무실은 7~8평이고 실내 장식도 소박하다.

송 회장은 2~3년 뒤엔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다. “대주주 역할은 큰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하지만 현대정보기술 등 계열사 경영은 계속해 유능한 전문경영인이 맡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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