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브라운 같은 리더 아시아에도 나와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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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28면

미국·유럽엔 일본식 장기 불황이 없을 것이라던 전망은 틀렸다. 오히려 비틀거리는 강대국들이 잘나가는 신흥개발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 아시아의 리더들은 좀 더 거만해질 필요가 있다. 아시아는 미국이나 유럽에 부족한 것들을 모두 갖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국내총생산(GDP)과 엄청난 규모의 저축이 있다. 금리를 내릴 여지도 충분하고 국내 소비를 확대할 능력도 있다. 세계 강대국이 되려고 애쓰는 나라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역동성도 있다. 중국은 인도와 호주의 GDP를 합한 것만큼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는 중국에 세계 경제의 ‘슈거 대디’(선물로 젊은 여자를 유혹하는 중년 남자) 역할을 요구한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돈을 대 달라거나, 미국 재무부를 도와 달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G20 정상회담에서는 누가 아시아를 대표할 것인가. G20에서 아시아는 확대된 영향력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 점에서 아시아 대표들은 다소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G7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다름없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쇠퇴 중이다. G7인 캐나다·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영국·미국은 지난 시절 그들 멋대로 세계 경제를 주물러 왔다. 하지만 G7의 지배권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 자리를 G20이 대신한다. G7 멤버에 아르헨티나·호주·브라질·중국·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한국·터키·EU를 더한 G20은 매우 합당한 구성이다. G20은 세계 GDP의 90%를 차지한다.

하지만 아시아에는 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처럼 목소리를 내는 리더가 없다.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브라운 총리는 별 볼일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위기를 통해 영향력을 회복했다. 은행을 국유화하는 그의 계획은 금융 시스템 안정의 틀이 됐다. 처음엔 그 방안을 무시했던 미국조차 그의 방안을 따르고 있다. 브라운 총리는 다른 이들이 이니셔티브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나서서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만하다.

전문가들은 아시아에도 그런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인데도 아시아를 대표할 비전이나 용기를 피력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 경제는 그리 크지도 개방적이지도 못하다. 호주는 너무 서방에 가깝다. 인도네시아는 남동아시아 최대의 경제 대국이지만 정정이 불안하다. 전문가들은 CEO 출신인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아시아의 고든 브라운’이 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서구의 리더들이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말하는 가운데 왜 아시아는 소외돼 있는 것인가. 왜 아시아는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인가. 미국의 역할은 지나치게 과대평가돼 있었다. 미국이 아시아에 이래라저래라 요구할 수 있는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미래 부의 상당 부분은 아시아에서 나올 것이다. 앞으로 IMF의 구조는 달라질 것이다. 금융 질서의 다극화가 시작될 것이다. ‘아시아의 고든 브라운’ 등장은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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