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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합법화하면 전투력 무너질 것” 반발 클 듯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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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03면

군대 내 동성애 문제를 다룬 이스라엘 영화 ‘요시와 자거(Yossi & Jagger)’의 한 장면.

“남성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정말 벗어나고 싶었다. 남성성을 강요하는 그곳은 정말 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내가 너무 싫고,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나의 답변을 받아 적은 군의관은 병명란에 ‘호모섹슈얼’이라고 적었다. 호모섹슈얼이 병이라니….”(동성애자 수기)

뉴스 분석│동성애자 인권이냐, 군 기강이냐

“선임이 남성적 동성애자라고 생각해 보자. 자기 마음에 드는 후임이 들어오면 ‘내 침낭에서 같이 자자’고 한다. 이 말이 농담이나 성희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적 문제로 일어난다. 후임들에겐 ‘탈영하고 싶다’ ‘죽고 싶다’는 사태가 생기는 것이다.”(인터넷 군 경험담)

두 글은 군대 내 동성애자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보여 준다. 입대를 앞둔 동성애자들은 남성끼리 생활하는 군대를 ‘로맨스의 공간’으로 선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입대 후에는 상황이 180도 바뀐다. 24시간 공동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 의해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는 ‘아우팅(Outing)’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언어폭력과 함께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반면 이성애자인 병사들에게 동성애자는 내무반 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실제로 동성애 성향을 보이는 선임 병사 때문에 애를 먹었던 기억을 가진 전역자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징병제도를 실시하면서 동성애자를 군 입대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모병제를 하는 미국이나 유럽과 다른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 내 동성애 문제를 통제해 온 수단이 군형법 제92조였다. 동성 간 성적 행위를 ‘계간 기타 추행’으로 금기시하고 합의에 의한 행위까지 처벌함으로써 성적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온 것이다. 1962년 군형법 제정 후 13차례 개정되는 가운데서도 이 조항은 계속 살아남았다. 군사법원에 따르면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군형법 제92조가 적용된 사건은 모두 176건이었다. 이중 4건은 합의에 의한 것이었고, 나머지 172건은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

재판부 군 판사 2명은 30대 초반
위헌 시비가 처음 불붙은 것은 2002년 헌법소원 사건. 당시 7명의 재판관은 “건전한 상식을 가졌다면 어떤 행위가 ‘추행’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어느 정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송인준·주선회 재판관은 “육·해·공군 사관학교에 여성 입학을 허용하고 여군 하사관 제도가 신설되는 등 여군 숫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 의견을 폈다. “남성 간 추행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면 여성 간 추행이나 이성 간 추행도 금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추행의 주체나 그 상대방에 대해 어떠한 명확한 해석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2006년 1월에는 국가인권위가 법 조항 중 ‘계간’ 부분에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반영돼 있다며 용어 정비를 권고하고 나섰다. 같은 해 4월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군형법 제92조의 폐지 또는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가 백지화하기도 했다. 당시 국방부는 “병영 내 모든 성적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법원은 군형법 제92조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쪽에 서 있다. 지난 5월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개인의 성적 자유를 보호하는 형법상의 ‘추행’ 개념과 달리 군형법의 추행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軍紀)를 해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특히 동성애 성행위를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라고 표현해 보수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번 위헌 제청으로 동성애 처벌은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됐다. 군사법원이 군형법의 위헌성을 문제 삼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해당 재판부는 재판장인 박상준 중령과 30대 초반의 군 법무관인 이경환·정유림 군 판사 등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제청 결정문에는 군 판사들의 달라진 인식이 곳곳에 담겨 있다. 지난달 현역 군 법무관들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23권 지정에 대해 “군인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것과 연관 지어 군 문화의 변화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일단 이번 위헌 제청은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장병권 사무국장은 “동성애·인권단체 등과 연대해 군대 내 인권침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군형법 개정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는 “계간이란 용어는 동성애자를 닭과 같은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라며 그 자체로 인권침해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을 보면 동성애자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또 군 기강이 문제라면 군 복무규정과 징계를 통해 유지할 수 있어요. 형사 처벌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최현숙 진보신당 성(性)정치기획단 대표도 “이성애에 대한 금지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동성애만 금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의 특수성에 대해선 “군도 우리 사회의 일부인 만큼 당연히 주어져야 할 시민의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며 “강제 추행은 일반 형법으로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마제국, 군 동성애 때문에 망해”
보수층과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군 법무관 출신인 전원책 변호사는 “군형법 제92조 폐지 주장은 군 조직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고 했다.

“군은 전쟁을 하기 위해 폭력을 관리하는 특수 집단입니다. 전투력의 생명은 기강이에요. 동성애 행위를 합법화하면 전투력은 물론이고 군 조직이 무너집니다.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는데, 동성애자끼리 애정 표현을 한다면 부대 단합과 위계질서가 어떻게 유지되겠습니까.”

한국교회언론회 이억주 목사는 로마제국을 예로 들었다. 이 목사는 “로마 군대에 신참이 오면 서로 자기 차지라고 싸웠다”면서 “로마제국이 망한 것도 이런 군대 내 동성애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권도 사회 전체를 지탱하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하고,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가치관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군 입대 연령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도 불안감을 나타낸다. 전모(48)씨는 “별도의 개인 방을 주면 모를까, 같은 내무반을 쓰게 하면서 동성애 처벌 조항까지 없애면 어떻게 안심하고 아들을 군에 보내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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