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책략 제1조는 ‘부드럽게 다가가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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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07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중국에 대한 시각은 강경하다. 그는 2년간의 대선 유세 과정에서 중국을 “친구도 적도 아닌 경쟁자”라고 규정했다. 중국 정부가 3월 티베트 시위를 유혈 진압하자 “(문제 해결을 위해선)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와 관련해선 “중국의 환율 정책과 지나친 수출의존형 경제성장 방식을 바꾸도록 모든 외교적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의 對中정책 브레인, 제프리 베이더

그러나 중국 측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현실적인 온건 노선을 걸을 것으로 기대한다. 저우치(周琪)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연구원은 “대선 후보의 발언과 대통령의 정책은 분명 다르다”고 말했다.

오바마의 대(對)중국 책략을 엿보기 위해선 브루킹스연구소의 손턴차이나센터 소장인 제프리 베이더를 살펴야 한다. 오바마의 외교 브레인 가운데 아시아 정책을 맡은 베이더는 1979년 미·중 수교 작업에 참여하는 등 30년 동안 중국 문제를 다뤄왔다. 그는 최근 발표된 브루킹스연구소의 한 보고서(‘Contending with the rise of China’)를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 정책의 방향을 예고했다.

베이더는 보고서를 통해 일곱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그중 ‘먼저 도발하지 말라’는 가장 먼저 강조되는 내용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을 섣불리 건드리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80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전임자인 지미 카터 시절 대만을 버렸다고 비난하면서 대만과의 외교관계 회복과 첨단무기 판매를 주장했다. 그러나 실현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중국과의 관계만 나빠졌다. 92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행정부가 ‘(89년 천안문 사태의) 베이징 학살자’에게 아부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임기 초반 ‘봉쇄정책’을 택했다. 하지만 정권 후반기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 2000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중국은 ‘전략적 동반자’가 아닌 ‘전략적 경쟁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양국 간에 고위급 전략대화를 정례화했다. 집권 초기 강경 정책을 주장했던 역대 정권들은 미국에 대한 신뢰에 의문만 남긴 채 시행착오만 했다는 게 베이더의 평가다. 그는 ‘부드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베이더는 둘째 원칙으로 ‘국제체제로 끌어들여라’고 제안했다. “미국이 중국을 대국으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기를 기대한다는 전략이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부시 정부에서 나온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responsible stakeholder)’이란 용어가 싫다면 다른 말을 쓸 수 있지만, 이 단어가 갖는 개념을 계승하는 게 좋다고 베이더는 제안한다. 예컨대 북한·이란 핵 문제는 미·중 협력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끈질기게 설득하라고 그는 주장한다. 셋째 원칙인 ‘세계 안전에 기여케 하라’ 역시 중국의 역할 분담을 의식한 것이다.

90년대 후반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는 미·중 관계를 위협하는 변수였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이 대만 독립론을 들고 나오자 미·일이 방조하고 있다고 중국 측은 의심했다. 베이더는 “양안 관계가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우려되는 유일한 문제이므로 적극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더는 “미국은 양안 화해무드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양안 관계에서 군사적 힘의 균형이 중국으로 급격하게 기운다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문제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와 중국 인권 문제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베이더는 가급적 충돌을 피하자는 쪽이다. “어떤 경우에도 무역분쟁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중국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미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동가와 보호무역주의자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 그는 또 “중국이 수출 주도형에서 내수 확대로 성장 전략을 바꾸는 것을 오바마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에 투자하는 게 미국 시장 진출의 좋은 방법임을 깨닫도록 해 중국의 대미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베이더는 말한다.

인권 문제 역시 대중 압력을 가하면 비(非)효과적일뿐더러 자칫 인권 상황의 후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이 스스로 인권 분야에서 모범을 보여 중국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부패 문제는 미국식 자유언론을 도입해 추방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더는 중국이 탈북자들의 피난처가 될 수 있도록 미국이 중국에 압력을 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에너지 분야의 협력 증대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에너지 소비 증가에 과민 반응하지 말자는 것이다. 중국의 지속적인 발전이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다만 중국이 해외 에너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베이더는 권유했다.

베이더는 유연한 대중 정책을 압축하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이 중국을 적으로 대하면 적을 얻을 것이요, 동반자로 대하면 협력과 도움을 얻을 것이다.” 미국의 역대 정권은 대중 관계에서 냉·온탕을 오갔다. 상황에 따라 ‘중국봉쇄론’ ‘중국위협론’ ‘중국포용론’이 힘을 얻었다. 공화당은 안보 위협을, 민주당은 경제적 도전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베이더는 대중 전략 수립 시 ‘존중’과 ‘실용’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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