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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눈물과 페일린 효과 잠재운 ‘인터넷 군단’의 明暗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호 34면

돈도 인지도도 없었던 버락 오바마가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인터넷의 공헌은 절대적이었다. 인터넷은 워싱턴 정가의 아웃사이더였던 오바마를 영상시대의 스타를 넘어 네트워크 시대의 스타로 만들었다. 멋진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언변,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메시지라는 양질의 콘텐트를 확대 재생산하고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인터넷보다 더 효과적 매체는 없었다.

선거전 초반부터 오바마는 인터넷의 가능성에 주목해 체계적이고도 정곡을 찌르는 e-선거 캠페인 전략을 구사했다. 그의 캠프는 어느 후보 진영보다 앞서서 다양한 유권자층과 직접 소통하고, 일방적 선전이 아니라 네티즌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지지층을 넓혀갔다. 이른바 ‘오바마 군단’이 탄생했다.

그 결과 오바마는 내년 1월 백악관 입성 시 1000만 명이 넘는 지지자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들어가게 됐다. 오바마의 정치적 기반을 이루는 이 새로운 정치세력은 기존의 정치 시스템, 특히 이익단체나 로비스트의 횡포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다. 오바마가 주창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에서 변화와 희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바마로선 변화를 열망하는 지지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다가갈 수 있고, 그들을 규합하고 정치적 행동으로 동원할 수 있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변화와 희망의 채널로 성공시킨 것이다.

오바마 진영이 택한 인터넷 전략의 핵심은 웹 2.0으로 대변되는 ‘소셜 네트워킹(social networking)’, UCC, 오픈 소스 형태의 참여다. 대표적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Myspace)와 페이스북(Facebook)에서 젊은 층과 고학력 네티즌은 열광적으로 오바마 팬이 됐다. 오바마를 사랑한다는 내용의 우스꽝스러운 동영상 ‘오바마 걸’은 유튜브에서 최고의 히트 수를 기록했다. 온라인상의 이런 열기는 곧 오프라인의 액션으로 옮겨져 자원봉사자만 200만 명이 넘었다. 약 85만 명의 유저가 5만 개 이상의 크고 작은 선거 이벤트를 자발적으로 조직했다. 온라인을 통한 모금액도 놀랍다. 6억 달러가 넘는 개미군단의 기부금이 선거전 막판까지 오바마 캠프를 지탱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웹 2.0이 오바마에게 선사한 수많은 지원병과 총알 앞에서 ‘힐러리의 눈물’도 ‘페일린 효과’도 속수무책이었다.

오바마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인터넷이 이제 그의 통치방식에 어떤 역할을 할지 사뭇 궁금하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전자미디어는 양날의 칼과 같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개인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갖지 못한 채 군중심리에 휩싸이면 혼돈의 정국으로 금세 치달을 수 있다. 인터넷의 속성상 개인의 입맛과 욕구·취향을 강화하는 쪽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웹 2.0식의 커뮤니케이션은 타인의 의견 청취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간의 유대를 강화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확대 증폭하는 데 그칠 수 있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이 가능하고 정치적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전자민주주의의 미래에는 사실과 허구의 분간이 모호하고 전문적 식견이나 지식보다 흥미 위주의 자극적 콘텐트가 범람하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이 함께 존재한다.

인터넷은 아마추어의 세상이다. 그러나 복잡한 현실 문제들을 아마추어들이 나서서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 무명의 정치인을 일약 세계적 리더로 세워준 오바마의 지지층은 현실정치에의 참여를 계속 원할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상에선 광속도로 모든 게 변할 수 있지만, 현실의 변화는 때론 끔찍하게 지루하고 복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엄습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혹한 속에서 오바마가 인터넷으로 불러일으킨 변화의 불꽃이 봄이 올 때까지 꺼지지 않고 타오를 수 있을까.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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