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웨이 감독,한국과 손잡고 영화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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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95년말 소개된.타락천사'이후 2년째 개봉작이 없었던 왕자웨이(王家衛)감독이 남미의 고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소리.소문 없이 새 영화 한편을 완성했다.무대가 된 도시 이름을 제명으로쓰고 장궈룽(張國榮).량차오웨이(梁朝偉)가 주연 한 이 영화는국내 대기업(삼성영상사업단)이 제작비의 30%를 댄 반(半)한국영화란 점에서 우선 눈길을 끄는데다 소재 또한 동성애를 다루고 있어 팬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있다.
왕감독이.한국영화'를 만들게 된데는 99년까지 왕감독 영화의국내 수입권을 갖고있는 영화사 모인그룹이 왕감독과 삼성에 다리를 놓아 가능했다.
칸은 일찌감치 올해 본선 후보에.부에노스아이레스'를 올려놓고있어 영화제가 끝나는 5월에야 한국을 포함한 세계에 공개될 전망이다.영화의 첫무대는 중국반환 직전의 홍콩.주인공 장궈룽은 동성애 관계를 청산하고 희망없는 홍콩을 떠나 아 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난다.떠난 애인 장궈룽을 못잊어하며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가슴 아프게 지켜보던 량차오웨이는 장궈룽을 찾아 남미로 간다.아버지 애인의 변심을 추궁하러 간 량차오웨이는 막상 동성애 클럽에서 댄서로 일하는 장 궈룽을 만나자 그와 사랑에 빠져버린다.
왕감독이 이단적이기는 해도 더이상 파격적이지는 않은 동성애 문제를 새삼 영화 소재로 들고나온 이유는 무엇일까.그는“동성애는 영화의 초점이 아니고 죽음까지 이르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낭만성을 얘기하고 싶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는 6편의 전작에서 사랑을 추구하면서도 소통 불가능한 현실때문에 좌절하는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그려왔다.그런 그가 모든 금기에 도전하며 죽도록 사랑하는 파격적 연인상을 그린다면 그것은 소통 불가능한 현실에 대한 절망의 극점인가,아 니면 새로운탈출구의 제시인가.
제작과정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이 영화가 색조나 분위기에서 91년작.아비정전'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말한다.계모아래 자란 남자가 생모를 찾아가는 내용의.아비정전'은 왕자웨이의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된다.어머니 없이 살아 가는 홍콩인들의 한시적 운명을 영화의 화두로 삼아온 감독은 그 운명의 극점을 홍콩반환전 마지막 영화가 될.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추구해본 것일까.물론 이 영화에서도 현란한 카메라 워크,퇴폐미 물씬한 원색의 사용,물기어린 음악으로 도시 의 감춰진 언어들을 번역해내는 왕자웨이 특유의 감수성은 더욱 깊이 있게 구사될 전망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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