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상품으로 뜨는‘스타 건축물’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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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06면

파도처럼 출렁이는 ‘글라스커튼 월’이 인상적인 도쿄 국립신(新)미술관(사진). 1996년 입안 이래 11년 만인 지난해 1월 문을 연 롯폰기의 명소다.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의 ‘공생의 철학’이 반영된 유리 소재가 안팎의 경계감을 없앤다. 소장품 없이 기획전만으로 운영되는 이 미술관에선, 바깥에 보이는 도시 풍경조차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다가온다.

국립신미술관ㆍ오모테산도 힐스(2006)ㆍ21_21 디자인 사이트(2007)…. 최근 전 세계 건축가와 관광객을 도쿄로 끌어들이는 화제의 건축물들이다. 뒤의 두 곳은 일본이 낳은 대표적 스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거품 경제 시대 지어진 도쿄국제포럼(1996)과 더불어 일본 건축의 높은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놀라운 발상의 건축가 이토 도요가 지은 오모테산도 ‘TOD’ 빌딩과 긴자의 미키모토 빌딩도 빼놓을 수 없다.

도시에 디자인을 입히는 이런 스타 건축물들은 1990년대 후반 일본의 ‘도시 재생 정책’에서 비롯됐다. ‘일본의 도시를, 문화와 역사를 계승하면서 풍요롭고 쾌적하며 국제적으로 활력에 찬 도시로 재생하자’는 것이 골자다. 직접적으로는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침체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재개발 처방’이 깔려 있다.

산업 기능 위주의 토지 구획을 정비하고 도시환경의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박차를 가했다. 2001년 도시재생본부가 내각에 들어섰고, 이듬해 민간의 자산과 노하우를 영입하기 위한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이 시행됐다.

도쿄의 스타 건축물들은 이런 사회적 변화와 맞물린 건축 인식의 변화에 힘입은 바 크다. 상업 건물이 상업적 용도에 그치지 않고 환경친화와 도시디자인이라는 공공성을 요구 받게 된 것이다.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21세기형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건축물들은 새로운 ‘문화 상품’으로 떠올랐다. ‘수요 창출’이라는 본래 기능을 120% 발휘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2008 대한민국공공디자인엑스포’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신홍경(경원대 실내건축학) 교수는 “도시의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있어 건축의 공공성은 핵심”이라며 “건축가는 빌딩 한 채만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안팎에서 일하고 쉬고 즐기는 모든 이의 삶을 설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도쿄의 건축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파격적인 외관이 함축한 파격적인 콘텐트”라며 “이제 막 공론화 단계에 있는 한국 공공디자인이 참고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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