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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미국문화<4>미셸 의상 놓고 말 많은 패션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호 07면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수락 연설은 미국 시민은 물론 전 세계 많은 이의 가슴을 촉촉히 적셨다. 특히 흑인으로 태어나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평범치 못한 유년기를 보낸 소년이 세계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은 모든 이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연설을 통해 모두가 하나 되는 미국을 울부짖던 그 순간에도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패션 칼럼니스트다. 이날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의 미래도 희망도 아닌, 엉뚱하게도 영부인이 될 미셸 오바마의 의상이었다.
미셸이 이날 입은 옷은 디자이너 나르시소 로드리게스가 9월 뉴욕 패션위크에서 발표한 2009년 봄 컬렉션 상품으로 ‘낙관주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정작 미래의 영부인이 이런 속뜻을 염두에 두고 의상을 골랐는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영부인들이 보여 줬던 보수적 옷차림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색상이 강렬했고, 정장 상의 대신 카디건을 매치해 입었다. 이를 두고 패션 칼럼니스트들은 “프랑스의 (모델 출신) 영부인이 부럽지 않다”는 찬사부터 “핼러윈 의상 같다”는 혹평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이들은 영부인을 포함한 미국 유명 인사들의 의상에 번번이 ‘패션 테러리스트’를 운운하며 옷을 예쁘게 못 입는 것이 무슨 큰 범죄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곤 한다. 그 기준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당최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정장 바지에 운동화 차림도 처음엔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더니 요즘은 트렌드세터라고 대접받는다.

설령 튜브 톱 드레스에 털 고무신을 신으면 어떤가. 가릴 데 가린 다음에야 죄를 물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기존의 절대적 가치와 질서를 거부하는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늘 파격을 추구해 온 패션계가 정답 운운하는 것은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문득 한때 즐겨 보던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가 생각난다. 어깨에 패드가 잔뜩 들어간 정장 상의에 딱 붙는 빨간 내복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서도 ‘이게 바로 요즘 압구정 느낌’이라고 자신 있게 외쳤던 그들이야말로 패션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하고 있는 김수경씨가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격주로 시시콜콜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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