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나의해>3.열일곱살 천재 태권도 소녀 최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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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자가 운동선수,그것도 태권도 선수가 되는데는 많은 장애가 뒤따른다.
특히 유교적 사고방식을 떨쳐버리지 못한 한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부모의 고집이 선수가 크는데 장애물이 되기 일쑤다.
160㎝,49㎏.태권도의 기대주 최유리(17.송곡여고3)도 그랬다. 유리는 강덕초등학교 3학년때 태권도를 시작해 5,6학년때는 매년 어린이날 펼쳐지는 전국어린이태권도대회에서 또래의 남녀초등학생들을 모두 물리치고 2년 연속.태권왕'에 올랐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남자를 물리치고 태권왕이 됐다는 것은최유리의 자질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방증.
그러나 중학교 진학과 함께 아버지 최태영(47)씨는 딸이 처음 태권도를 배우려했을 때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제동을 걸었다.
“여자는 시집 잘가는게 최고다.무시무시한 태권도선수를 누가 며느리로 맞이 하겠느냐.착실히 공부나 해라.” 유리는 그럴 수없었다.태권도장을 기웃거리며 선수들 옆에서.눈동냥'이라도 해야했다.혼자 발차기도 해봤지만 성에 안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유리의.도장잠행'을 눈치채고 전략(?)을 짜냈다.사범에게 유리를 테스트한뒤“자질이 없으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거짓말을 해달라는 부탁이 바로 그것.
그러나 결과는 유리의 승리였다.유리의 우수한 자질이 사장되는것을 안타깝게 여긴 사범의 설득과 유리의 태권도를 향한 집념에최씨는 두손을 들어야 했다.결국 최씨는 적극 지원으로 돌아서 태권도 명문학교인 송곡여고(교장 왕표순)로 유 리를 보냈다.이제는 매일 새벽 분당집에서 학교(망우리)까지 데려다줄 정도로 열성이다.
태권도를 교기로 하고 있는 같은 재단의 태권도 명문 송곡고에서 유리는 남학생들과 함께 국가대표 출신 이재봉감독의 지도를 받게 됐다.“한동안 쉬었음에도 놀라운 적응력을 보입니다.왼발돌려차기가 뛰어나고 순발력이 좋아 올해 국가대표 도 전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최유리는 97년을 맞이하는 각오가 남다르다.
“이제라도 제뜻을 받아들여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반드시국가대표에 뽑혀 방콕아시안게임과 시드니올림픽의 금메달을 아버지께 드리겠습니다.”이를 위해 유리는 오전6시부터 오후10시까지남자들도 힘들어하는 훈련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 다.
해맑은 웃음이 귀엽기만한 어린 소녀.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의지를 당당하게 펼쳐나가는 신세대다.

<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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