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사 핫라인’만 남기고 통신 차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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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잇따른 대남 압박 조치가 남북 간 통행과 통신을 일방적으로 차단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북한 군부가 12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MDL) 육로 통행을 제한·차단하겠다고 밝힌 것과 동시에 조선적십자회는 판문점의 남북적십자 직통전화를 폐쇄했다. 판문점 직통전화는 1971년 9월 개통된 뒤 남북의 중심 통신망이었다.

하지만 북한 군부는 군사통신 채널은 그대로 유지했다. 국방부 이상철(육군 대령) 북한정책과장은 13일 브리핑에서 “육로 통행 제한을 담은 북측의 12일자 전통문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답신을 보냈고 북한은 받아들였다”며 “남북 군사 당국 간 채널은 정상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통상 오전 8시 시험 통화로 정상 가동 여부를 확인하고 그날 북한에 들어갈 개성관광객 숫자나 통과 시간, 개성공단에 들어갈 인원 수와 자재 장비 등을 알려왔는데 이날도 정상 가동됐다.

물론 남북 간에는 여타의 전화연락망이 있다. 인천공항과 평양 순안비행장을 잇는 항공관제 라인과 남북 간 선박 운항에 쓰이는 해사 당국 간 채널(서울~평양)이다. 하지만 13일 통화한 결과 모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라인들은 남북 간의 항공·선박 운항에 한정된 것이다. 서울과 개성의 남북 경협사무소를 잇는 라인도 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의 추방 위협에 현지에 머물던 우리 당국자들이 철수한 상태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뒤 임동원 국가정보원장과 북한 김용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사이에 개설됐던 핫라인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끊겼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군부는 군사통신선을 사실상 유일한 남북 간 대화 채널로 이용하고 있다. 현재 남북 간 군사통신 라인은 모두 9개다. 이 중 개성공단 지역을 연결하는 서해선은 6개다. 교류·통행에 쓰이는 선이 3개, 서해상 군사 충돌 방지용이 3개다. 또 금강산 지역을 잇는 동해선 3개가 있다. 선이 각 3개로 구성된 것은 전화와 팩스, 예비 라인이 각각 한 개씩이어서다.

북한은 군사통신선의 성능 개선에도 부쩍 신경 쓰고 있다. 서해 통신선은 구리선이어서 잡음과 고장이 잦아 지난 6월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과 관련해서도 동해선 라인을 이용하는 실정이다.

정부 당국과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군부가 향후 주요 긴장 조성 조치를 사전 통보하는 채널로 군사 채널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조국평화통일위나 아태평화위를 제쳐 놓고 강경 성향의 군부가 대남 소통 채널을 독점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북측이 판문점 군사회담만 주기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란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당국자는 “김정일 건강 이상 국면에서 북한 권력 내에 군부의 입김이 강화되는 조짐이 아닌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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