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도>36.블루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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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대전 부르스'.무정 부르스'.영동 부르스'….우리 가요중에는 이처럼.부르스'란 용어를 제목으로 삼고 있는 노래들이 많다.일본식 영어란 심증이 짙은 이 용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노래들은 대부분 진짜 부르스,즉.블루스'(Blues )와는 너무나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서양의 대중음악이 유입되면서 음악적 형식과 그 속에 내재된 정서가 심하게 왜곡된 경우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블루스는 개념자체가 완벽하게 오해되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국내에서는 대개 빠른 춤곡에 대조되는 느린 템포의 춤곡 쯤으로 인 식되고 있다.많은 사람들은 블루스 또는 부르스란 단어를.카바레나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느린 템포의 음악에 맞춰 남녀가 짝을 지어 추는춤'의 의미로 사용한다.그만큼 블루스란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블루스는 어떤 음악인가..블루노트 5음계로 이뤄진다'거나.슬라이드 기타 주법을 사용한다'는등의 전문 용어가 뒤섞인 사전적 설명보다 에릭 클랩턴의.원더풀 투나잇'을 떠올리는 것이 보다 이해가 빠를 듯하다.축축 늘어지는 기타 ,꺼칠꺼칠한목소리로 웅얼거리는 보컬이 블루스의 형식적 특색을 잘 보여주는곡이기 때문이다.최근 국내에서 크게 인기를 모았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나.더 메시아 윌 컴 어겐'으로 널리 알려진 로이 부캐넌은 보다 더 블루스의 원형에 충 실하다.물론 비비 킹이나 존 리 후커.스티브 레이 본등 거장들의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쉽게 블루스를 이해할 수 있다.
블루스는 형용사.블루'에서 파생된 말이지만.우울하다'는 우리말 번역으로는 어딘지 설명이 부족한 듯한 정서를 담고 있다.블루스의 기원은 금세기초 미국 남부의 농장지대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에 있다.고된 노동의 시름과 경제적 궁핍.신분적제약에 따른 한과 절망을 흑인 노예들은 극히 단순한 형식의 음악,그래서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쉬운 노래로 달랬다.그것이 블루스의 모태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블루스가 반드시 늘어지고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장례식에서도 어울려 춤을 추고 행진곡을 연주하는 흑인들의 낙천적인 기질은 경쾌하고 흥겨운 리듬으로 변형시킨 블루스를통해 한을 승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탄생한 블루스는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가 됐다.남부농장지대에서 시카고로 북상,도시화된 블루스에 흑인 생래의 리듬감을 첨가해 흐느적 거리는 느낌을 강조하고세련된 화음을 입혀 가다듬은 것이 리듬 앤드 블 루스(R&B)고 백인 음악인 컨트리와 결합한 것이 로큰롤이다.비슷한 시기.
비슷한 지역에서 탄생한 재즈에도 블루스는 깊숙이 침투해 있고 흑인의 수난이 어려있다는 솔 음악도 블루스 정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개념에서부터 오해를 빚고 있는 국내의 현실에선 블루스의 음악사적 중요성이나 미학적 가치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기대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일지 모른다.그 때문에 한국의 블루스맨들은 고독하다.역설적으로 그러한 고독이 오히 려 그들의 연주를 더욱 블루스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하지만 블루스를 고집하는 사람의 숫자는 적어도 많은 록 가수.연주인들이 음악적뿌리를 블루스에 두고 있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그 결과 우리 가요중에도 블루스로 분류될 수 있는 히트곡이 적지 않다.
국내 가요계에 블루스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후반 이후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미8군 무대에서 연주활동을 펼쳤던 직업 음악인들이 블루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것이다.
한국 록의 대부로 평가되는 신중현도 그런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그는 비록 정통 블루스 곡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60년대 블루스 리바이벌을 주도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에게 강한 영향을받았고 지금도 틈틈이 후배들과 함께 블루스 잼(즉흥연주)을 벌인다.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은.어머님의 자장가'.겨울바다'등 블루스적 색채가 강한 곡을 발표했다.또 양병집.이정선등 통기타 가수들은 포크와 블루스가 혼합된.포크 블루스'음악들을 내놓았다.이정선의 78년작.건널 수 없는 강'은 거의 완벽 하게블루스를 소화한 곡이란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의 블루스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뭐니뭐니 해도.신촌블루스'다.엄인호와 이정선을 주축으로 86년에 결성된 신촌블루스는 사실상 처음으로 블루스를 대중화했고 한영애.
김현식.정경화등 탁월한 보컬리스트들을 배출했다.지 금까지 꾸준히 라이브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신촌블루스는.루씰'.그대 없는 거리'등 정통 블루스 곡과 신중현의.봄비'를 블루스로 재해석했다. 초창기 신촌블루스의 멤버였던 한영애에겐.한국의 제니스 조플린'이란 별칭이 따라다닌다.그의 활동영역은 포크.록.재즈등.
전방위'에 걸쳐있지만 목소리 색깔 자체가 블루스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누구 없소'.코뿔소'등에 서 보여지는 블루스 창법은 가위 독보적이다.
오랫동안 언더그라운드를 지키고 있는 윤명운은 초기 신촌블르스에 참여했고 한영애의 히트곡.누구없소'를 작곡했던 블루스맨.89,91년 두차례 음반을 완성했다가 빛을 보지 못하고 묵히는 우여곡절끝에 지난해 봄 발표한 그의 독집음반.블루 스 하우스'는 어느 곡 하나 버릴 것 없는 명반이다..김치랙'.부르스를 위한 블루스'등을 부른 그는 가장 미국적인 음악어법으로 가장 한국적인 내용을 담아내는 재능을 발휘했다.
이들이 순수 국내파라면 김목경.한상원.채수영등은 해외파 블루스맨.김목경은 6년간의 영국 유학기간중 블루스에 심취,클럽에서의 연주는 물론.거리의 악사'생활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외곬로 최근 활발한 공연활동으로 지명도를 높이고 있다.김 목경의 공연에서는 손가락에.보틀 넥'이라 불리는 긴 반지를 끼고 지판위를종횡무진하는 슬라이드 주법을 감상할 수 있다.록에 가까운 블루스를 들려주는 그는 에릭 클랩턴에게 바치는 곡.미스터 클랩턴'이란 곡을 내기도 했다.올 봄에 내놓 을 3집에서 보다 정통에가까운 블루스를 선보이겠다고 벼르고 있다.그래서 음반 제목도 일찌감치.리얼 블루스'로 정해 놓았다.
버클리 음대 출신의 한상원은 흔히 퓨전재즈 연주자로만 알려져있으나 실은 블루스 곡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기타리스트다.그의 1집에 담긴.윌의 블루스'.그대의 모습은'등과 지난해 정원영과의 조인트 콘서트에서 선보인 .솔리튜드'등이 이 를 입증한다.
고난도의 테크닉과 함께 영적인 느낌(필링)이 짙은 연주를 보여준다.최근 2집 녹음에 열중하고 있다.
채수영은 홍콩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돌아와 서울 이태원에 있는국내 유일의 블루스 클럽.저스트 블루스'에 출연하고 있는 정통파.언더그라운드에서만 활동하고 있지만 이미 명성이 자자한 그는지미 헨드릭스.스티브 레이 본.에릭 클랩턴.비 비 킹의 곡을 주로 연주한다.틈틈이 만들어둔 자작곡을 모아 곧 음반을 낼 예정이다. 이밖에 인기 록가수 강산에와 윤도현은 창법 자체가 블루스 록의 영향을 깊이 받았고 심심찮게 로큰롤과 블루스가 혼합된 노래들을 들려준다.강산에의 2집에 담겨있는.문제'(원제.돈')는 그런 경향을 대표하는 곡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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