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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지구촌쟁점>2.도전받는 미국의 지도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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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탈냉전 시대에 미국의 지도력을 결정하는 요소는 두가지다.바로분쟁 당사국들이 미국의 중재에 얼마만큼 따라 주느냐와 해외분쟁개입을 둘러싼 국내 여론의 향방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이후 줄곧.21세기로 가는 다리'라는슬로건을 내세우며 새롭게 전개되는 신(新)국제질서속 미국의 지도력과 위상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고 공언해왔다.그가 강조하는.
예방외교'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지도력'에 도전 하는 세력의 출현을 사전 차단하겠다는게 목적이다.세계경찰로서 미국의 역할을지켜나가려는 미 외교정책의 이같은 근간은 클린턴 집권 2기에도변함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의 발목을 붙잡는 내외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대내적으로 미국안에서 신고립주의 경향은 갈수록 확산돼 사실 소련붕괴 이후 국제문제에 대한 미국민들의 관심은 급격히 식어버렸다.
그런가 하면 정치권에서도 국무부.CIA등 외교정책 수행기구의축소개편론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미국은 이제 제 앞가림에나 더신경써야 한다는 이유에서다.미 국방부가 올해 새로 만들게 될.
전략검토보고서'에서 걸프지역과 한반도에서의 동 시전쟁 대처역량을 애써 강조한 것도 이같은 신고립주의에 대한 힘겨운 대응의 일환으로 해석된다.냉전시대 자행됐던 해외 테러지원,인권탄압정권에 대한 무기수출사례등이 최근 들어 연이어 폭로된 것도 적극적외교정책의 국내 지지기반 확보에 적지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사정은 바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미국의 지도력에 대해 올해에도예외없이 치열한 도전이 예상되고 있다.
미국은 올해도 중동평화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확대,그리고 중국.북한 길들이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보스니아는 NATO의 주둔이 연장된 가운데 불안한 평화가 계속되고 있고 중국과는 대결보다 평화를 지향,양국관계의 정상 화를 향한 교차정상회담을 약속해놓고 있으나 전망은 불투명하다.유럽에서는 통합의 가속화로 블록화가 한층 진행되는 가운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미국에의 견제가 더 강하게 고개들 조짐이다.
한반도의 경우만 하더라도 북한의 잠수함사건에 대한 사과로 교착상태는 일단 매듭을 풀었으나 경수로공급과 경제지원등이 과연 순조롭게 이행될 수 있을지는 쉽게 속단키 어려운 상황이다.따지고 보면 지난 선거에서 클린턴이 외교업적으로 선전 한 중동평화,보스니아 평화협상,북한 핵동결도 모두 위기 일보직전에서 강압적 대응,또는 원칙없는 양보를 통해.봉합'된 것들이다.
이와함께 냉전종식후 대량 살상무기 확산억제를 최우선과제로 설정했음에도 중국의 파키스탄.이란에 대한 미사일.핵기술수출 역시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했고,특히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의 연임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보인 미국의.오 만'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자초하기 충분했다.
지난 4년간 비전과 뚜렷한 철학에 기초하지 못했던 미 외교가올해 갑자기 새롭게 태어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오히려 종교.인종.민족갈등에서 비롯된 예상치 못한 분쟁과 마약.난민.영토분쟁 같은 문제에 대한 임기응변적 대응에만 여전 히 급급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않다.미국의 그러한 원칙없는 외교가 올해도 계속된다면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세계 지도력에 더욱 흠집을 내는 결과를 자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그것을 되돌려 보려는데 클린턴 2기의 숙제와 고민이 함께 놓여있는 것이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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