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적 정보문화를 창조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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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금세기중에는 접속자가 10억명에 달할 것이라는 거대한 조직이면서도 인터넷의 전체 네트워크에는 어떤 주인이나 관리 통제자가없다는 것,외부로부터 이용자를 간섭하거나 규제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돼 있으며 이용자 상호의 관계가 대등하다 는 것,그리고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어떤 허락이나 규제없이 수신자에서 발신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등의 특성을 갖고 있다.마크 그레이엄의 표현대로.통제불능의 아나키'로서 일찍이 봉건국가에서 근대 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출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정보기술혁명은 지금까지.폐쇄적'이고.수직적'이며 일극(一極)중심주의'사회에서 살아온 한국인에게 커다란 문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더구나 인터넷은 주로 젊은이들의 매체이므로 앞으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발신지향 적 젊은이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한국의 세대를 크게 인쇄활자시대와 텔레비전 시대에 의해 분류해 왔지만 이제는 인터넷 세대와 그 이전세대로 구분될 것이다.이미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기원전(BC)이 인터넷 네트워크 이전의 시대 (Before Cable)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개체론이나 개인주의적 가치체계에 뿌리를 둔 근대 서구문명 위에 세워진 정보사회에서는.통제불능의 아나키'의 정보 시스템은 폭력과 독점의 아나키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모든 유토피아의 꿈이 그랬듯 인터넷에도 검은 신화의 뒤안길이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도 벌써부터.사이버 푸어'.사이버 리치',그리고 .
사이버 테러리즘'.버추얼 섹스'.사이버 포르노'와같은 신조어가등장하고 있다.그리고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그 정과 믿음을 상실한 사이버 스페이스의 소외현상이다.
물리적 기술혁명이 곧 인간내부의 의식혁명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것은 현대의 정보 테크놀러지를 따라갈 수 있는 문화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의 정비나 통신서비스에 대한 복지개념을 지금부터 마련해가야 한다.사이버 스페이스에는 국경이 없지만 법에는 나라마다 엄격한 국경이 있다.그래서 포르노를 규제하려 해도막상 생산자(발신자)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본 수 신자밖에는 처벌할 길이 없게 된다.정보가 진정한 인간의 행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자권의 정보통신이라는 말속에 들어있는.정(情)'과.신(信)'의 뜻을 새롭게 해석하는.한국적 정보문화(情報文化)'를 새롭게 창조해내야 할 것 이다.
〈이화여대 석좌교수〉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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